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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예와 병사 만들기 / 안연선

by eunic 2005. 4. 11.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


매체명 한겨레
작성일 2003-08-16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 /안연선 지음 /삼인 펴냄·1만3000원

‘종군 위안부.’ 이 말에 담긴 위선과 거짓과 추악한 자기기만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자발적으로 군대를 따라가 성적 서비스를 제공했던 여성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니, 이 말이 덮어버린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로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군 위안부라는 말은 좀더 정확한 용어, ‘일본군 성노예’라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 여자정신대란 이름으로 징용을 당하거나 좋은 곳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로 속이거나 그냥 백주 대로에서 납치해 간 것부터가 이들이 자발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들이 ‘위안소’에서 당했던 “강제규율, 감금상태, 자유박탈 등을 고려할 때 성노예라는 용어보다 더 적당한 용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 ‘위안부’의 존재마저 극구 부정하다가, 1992년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에 일본군 당국이 ‘위안소 제도’에 직접 관여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자 마지못해 그 존재를 시인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92년 1월 이후 10년이 넘도록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옛 ‘위안부’ 생존자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노력을 게을리했다. 더 알 수 없는 것은 위안부 존재 자체가 한국 땅에서조차 반세기 가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90년 초 민간운동단체들이 이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리고, 고 김순덕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이 나오고 나서야 한국인들은 일제의 만행 가운데 하나로 ‘위안부’ 항목을 추가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위안부’ 생존자들은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존재였다. 무엇이 이들을 ‘침묵’ 속에 밀어넣었을까?


여성학자 안연선(40)씨가 쓴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는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마저 은폐와 기피의 대상이 돼 왔던 ‘위안부 문제’를 생존자들의 생생한 인터뷰에 근거해 새롭게 재조명한 연구서다.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활동에서 시작해 10년 넘게 이 문제를 연구해온 지은이는 한국인 피해 여성들뿐만 아니라 가해 남성들, 그러니까 옛 일본군 출신 생존자들까지 인터뷰해 ‘위안부 제도’를 실존적 차원에서 정치적·이념적 차원까지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위안부’ 여성들의 피맺힌 절규는 일본군 생존자들의 거만한 정당화와 맞부딪치고, 그 상반된 증언은 제3의 시각에서 재해석된다.


특히, 이 책은 기존의 민족주의적 시각과 여성주의적 시각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지은이는 한국의 민족주의적 시각이 ‘위안부 문제’를 인권의 문제 이전에 민족 말살의 문제로 접근하고 해석해 왔다고 말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여성의 정조를 짓밟았음’을 비난하는 민족주의적 수사학에는 가부장적인 순결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으며, 여성의 몸을 민족의 소유로 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성(젠더) 중심의 여성주의적 시각은 여성문제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이 시각에서 바라보면 위안소 제도는 국가가 식민지를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여성에 대한 범죄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관점은 “성폭력과 식민지 권력 사이의 관계를 간과함으로써 위안부 제도가 특별한 식민주의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을 보지 못한다.”


지은이는 그가 ‘여성주의 운동 지향의 관점’이라고 부르는 시각을 통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식민주의 지배’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각의 반인권성을 비판함과 동시에 한국의 민족주의적 시각의 반여성성을 극복한다.


지은이의 관점에 따르면, 일본 군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설치됐던 ‘위안소’는 단순히 성욕을 해소하는 공간을 넘어 식민주의·가부장주의 이데올로기가 실천되고 형성되는 마당 노릇을 했다. 지은이는 일본 군대의 특성을 이루는 ‘군인정신’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극단적 양분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한다.

공격성과 파괴성을 증폭시키기 위해 고안된 남성성의 강조는 ‘진짜 사나이’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전장의 병사들에게 심어주었고, 그것을 입증하는 방편으로 ‘위안부’들에 대한 폭력적인 성착취가 일반화했다. 동시에, 일본 군대는 희생·복종·규율이라는 ‘여성화’ 또한 극단적 형태로 실현시켰다.

엄격한 규율의 위계질서 밑바닥에서 희생과 복종에 짓눌리는 병사들은 ‘위안소’ 여성들을 억눌린 남성성의 배출구로 삼았다. 성행위는 수시로 폭력과 학대를 동반했다. 위안소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실행하는 장이기도 했다.

조선인 ‘위안부’들을 강간하고 폭행함으로써, 그들의 ‘순결’과 ‘정조’를 짓밟음으로써, 그리하여 조선 여성들의 ‘정체성’을 붕괴시킴으로써 일본 군인들은 조선 민족을 유린하는 우월한 일본 민족의 구성원, 천황의 군인으로 스스로를 만들어냈다.

“지속적인 성폭행은 한 여성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아정체성을 파괴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이런 학대에 반항·탈출·실성·자살의 형태로 항거하기도 했지만, 대다수가 18살 미만이었던 어린 소녀들에게 죽음의 위협 속에 가해지는 성폭력은 저항의 의지마저 꺾어버렸다.

더구나 이들은 ‘정조’라는 유교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더럽혀졌다는 생각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를 조국에 돌아오지도 못하는 ‘국적 없는 부랑아’로 만들었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도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철저히 감추어야 했다.

그들을 보듬어야 할 한국 또한 이들을 ‘민족의 수치’라고 생각해 오랫동안 방치했다. 지은이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이 일제의 만행을 단죄하는 운동을 넘어 반여성적 관념을 깨뜨리는 여성의 주체화를 향한 운동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