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김승희의 '만파식적'

eunic 2005. 3. 2. 17:47
만파식적(萬波息笛)

김승희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에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 자리가 생기지
그 빈 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 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 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