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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4일 손석희 앵커브리핑 노회찬편

by eunic 2026. 4. 14.

[앵커브리핑] '비교의 한계'

그는 누구보다도 비유를 즐겼던 사람입니다.

"판을 갈아야 한다"며 들고 나왔던 '삼겹살 불판'으로부터,

"정답 없는 문제에 가장 가까운 답"이라던 '기권'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유는 촌철살인이었고,

그것은 늘 정치의 뒷골목을 향하기보다는 정치가 가야 할 앞길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그를 잃은 사람들에게 지난 며칠은 참으로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두고 "돈 받고 스스로 목숨 끊은 분"이라 차갑게 일갈했습니다.

물론 그가 받은 돈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행위 또한 '옳은 일'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비교의 한계'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돈 받고 목숨 끊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

즉, 사람들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자들의 파렴치함을 숱하게 보아온 터에,

적어도 그가 가졌던 그 '부끄러움'을 존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이 정치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모욕은

아마도 그 삶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겠으나,

역설적으로 그 모욕은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부끄러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그를 돈과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진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비교의 한계'는 2019년 4월 4일 앵커브리핑의 제목이자, 그날 메시지의 핵심 논리였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이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1. '숫자'와 '가치'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당시 오세훈 전 시장은 노회찬 의원이 받은 '돈(금품)'이라는 수치와 '자살'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손 앵커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 오세훈의 시각: (받은 돈의 액수) → (부도덕함) → (비난받아야 할 죽음)
  • 손석희의 시각: (받은 돈의 사실) < (그가 느낀 부끄러움의 깊이)

즉, 단순히 "얼마를 받았느냐"라는 물리적 사실과, 그 사실 때문에 목숨을 버릴 만큼 괴로워했던 한 인간의 **'염치'**라는 가치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고결한 양심은 단순한 비난의 잣대로 측정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2. '파렴치한 자들'과의 비교

브리핑 내용 중에는 이런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자들의 파렴치함을 숱하게 보아온 터에..."

세상에는 수억, 수백억을 받고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노회찬 의원이 받은 잘못은 작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노 의원은 그 작은 잘못조차 견디지 못해 자신을 던졌습니다.

손 앵커는 **끝까지 뻔뻔한 거악(巨惡)**과 작은 허물에도 목숨을 걸 만큼 부끄러워했던 노회찬을 같은 '범죄자'라는 카테고리로 묶어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그것이 바로 비난의 논리가 가진 **'한계'**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브리핑에서 말하는 **'비교의 한계'**란,

"누군가의 삶을 단순히 '돈'이나 '잘못'의 크기로만 재단하려는 시도는, 그 사람이 지켰던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적 품격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비난하는 자들의 잣대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인간적 고뇌의 영역이 있음을 강조한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