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녹지않는 얼음' 게시글 너무 좋고, 댓글도 너무 따스해서 옮겨봄
28살, 백수 생활 2년차
우울증이 심해져서 퇴사 후 간간히 알바만 하며 남한테 손 안 벌리고
혼자 조용히 입에 풀칠만 하며 사는 인생 중인데
저도 제가 너무 한심하거든요.
같은 나이 친구들은 연차 쌓여서 승진하고 일찍 결혼해서 애 낳은 친구도 있는데
나는 방구석에서 하루종일 멍때리기 말고는 하는 일이 없고
가끔 치킨 같은 거 먹고 싶어도 하는 일도 없이 처먹기만 하는 거 같아서
고작 치킨 한마리도 맘놓고 못 사먹겠어요.
쌍둥이 남동생은 벌써 가정 꾸렸고 매달 엄마한테 용돈도 드리고
엄마네집 에어컨도 바꿔주고 남부럽지 않은 멋진 자식일텐데
쌍둥이 누나인 저는 백수니까 늘 자신감도 없도 더 우울했어요.
그래서 엄마랑 동생이랑 연락도 잘 안하고
원룸에서 나가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오늘 엄마가 계모임에서 술 한잔 하셨다더니
수박을 집앞에 놓고 가셨어요.
제가 수박 엄청 엄청 좋아하거든요.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기 힘들까봐 손수 다 깎아서 통에 담아서 오셨는데
우울증 핑계로 늘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한심한 자식도 자식이라고 집앞에 수박을 놓고 가셨네요.
남들처럼 어버이날에 몇십 몇백씩 용돈 못 드리지만
십만원 계좌로 보냈더니 전화가 오셨네요.
동생 프사에 돈 나오는 케이크가 올라와 있는 거 보면 못해도 100은 해드린 거 같아요.
나는 10 해드렸는데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내가 누나인데도 동생보다 많이 못 드려 죄송하다 했더니
엄마한테는 동생보다도 제가 더 고맙다 하시네요.
그래서 우울증 백수딸이 뭐가 그렇게 고맙냐 하니까
쌍둥이로 한날 한시에 나왔지만 동생보다 제가 더 효녀래요.
어릴때 동생은 순해서 울지 않았는데
저는 엄마 껌딱지라 조금만 떨어져도 사이렌처럼 울었대요.
그래서 시어머니 구박이랑 시집살이에도 벗어날 수 있었대요.
제가 하도 난리치며 우니까 할머니가 엄마보고 설거지 하지 말고 방에 가서 애나 보라고 하셨다고
저 낳은 이후로는 주방에 들어갈 일이 줄었대요.
제사 때도 제가 엄마 곁은 안 떠나서 할머니가 저한테 여자애가 쓸모짝 없다고 쥐어박을 때
그럼 할머니도 여자니까 쓸모짝 없다고
엄마 손 잡고 방에 들어와서 방문 걸어잠그고 같이 자자면서 엄마 곁을 벗어나질 않았대요.
그러다가 결국 시집살이와 아빠의 폭력 등으로 이혼하셨고 한동안은 할머니 댁에서 살았어요.
엄마랑 헤어진 게 너무 슬퍼서 말도 안하고 밥도 죽지 않을만큼만 먹다가
머리 좀 크고 나서는 동네방네 엄마 욕하는 할머니랑 치고박고 싸웠어요.
우리 엄마 욕하지 말라고 할머니 때문에 아빠 때문에 엄마가 집 나간 거라고 난리쳤거든요.
동생은 집나간 엄마가 뭐 좋냐며 아빠랑 할머니가 훨씬 좋다 그랬어요.
당연하겠죠. 걔는 남자애라 사랑받았고 나는 여자애라 집안일 독식하면서도 늘 구박데기였으니까요.
그러다 좀 더 크고 나서 엄마가 저희를 데리러 왔어요.
가난해서 엄마가 새벽까지 식당알바를 했는데 제가 늘 엄마를 기다렸다가 엄마 어깨를 주물러 줬거든요.
잠에 취해서도 엄마 어깨 주물러 주던 제가 엄마한테 최고의 자식이래요.
할머니가 엄마 욕하고 다닐때 엄마 대신해서 싸워줘서 고맙대요.
동생한테는 비밀인데 엄마는 저를 좀 더 사랑하신대요.
백수여도 우울증이여도 엄마한테는 제가 항상 자랑스럽대요.
전화 끊고 한참을 울었네요.
수박이 달아서, 엄마의 사랑이 달아서
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은 밤이네요.
우울증 이겨내서 취직도 하고 돈 열심히 모아서 엄마 첫 비행기 태워드리고 싶어요.
댓글 중에 이쁜 댓글만 뽑아본다.
하... 수박이 달아 사랑이 달아....
박완서가 살아 돌아온 느낌
어릴 때부터 객관적이셨고, 현재도 객관적이고 씩씩하세요.
치료 잘 받으시고 본인 페이스 찾으면 투쟁적으로 잘 사실 거에요.
엄마 사랑 듬뿍 받았고, 객관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 잘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