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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횡단의 대화를 기다리며

by eunic 2007. 3. 8.

‘횡단의 대화’를 기다리며

-「축첩제 그늘 속의 성과 성 노동」에 대한 토론문-


정희진


1. 성매매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남성과 남성의 ‘차이’, 여성과 여성의 ‘차이’를 동시적으로 고려하며 이 ‘차이’들의 상호 작용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여성주의자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이슈이다. 나이페이 딩의 논문은 성매매 문제 뿐 만 아니라, 가족 제도와 여성의 섹스, 여성의 범주, 여성운동의 정의를 둘러싼 정치학, 행위자로서의 여성의 의미, ‘선택은 곧 동의를 의미하는가?’ 등 현대 여성주의 정치학의 핵심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다.


2. 나는 그녀의 논문을 읽고,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1) sex-gender-sexuality의 관계는 연속적이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이들의 관계는 특정한 시공간의 역사성과 정치 경제학의 산물이다.

2) 1997년-1998년 타이베이 시 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운동인가, 아닌가? 누가 여성인가?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이해(interests)는 무엇인가?

3) 성 판매 여성과 여성주의자의 관계는 젠더 모순으로 설명할 수 없다. 즉, 성 판매 여성들의 아젠더는, 젠더 개념에 근거한 기존의 여성주의 정치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4) 성매매는 젠더 이슈이면서, 동시에 계급 문제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남성과 여성의 차이보다, 노동자-노동자 간 여성-여성 간 차이가 더 급격해지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매매는 점점 더 젠더 문제 뿐 아니라 계급과 인종, 지역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에게 계급은 곧바로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되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계급 문제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성매매는 젠더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계급 개념이 얼마나 몰성적(gender/sexuality blind)인지를, 따라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준다.

5) 그녀는 ‘타자’에게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를 질문한다. 아내 폭력(violence against wives) 피해 여성에게, “왜 탈출하지 못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폭력 남성과 그를 지지하는 남성 사회의 입장에서 구성된 언설이다. 성 판매 여성에게 “왜 이 일을 선택 했는가”의 질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6) 한국의(혹은 대만의) 여성주의자들이 성 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포주 혹은 남성의 목소리로 환원하는 사유 방식은, 남성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다르지 않다)

7) 무엇이 여성의 인권인가? 성매매 근절이 여성의 인권인가? 성 노동자에게 성매매를 허용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인가?

8) 그녀의 지적대로, ‘성 판매 여성’과 ‘주부’의 경계, 섹스와 섹스 노동의 경계는 매우 유동적이다. 그녀가 질문하고 있는 것은 “모든 여성은 같다”가 아니라, 하녀, 첩, 아내의 경계가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의 지위는 그토록 다른 가치를 갖는가이다. 그것은 누구의 시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