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게 줄 곡물사료로 13억명 먹일수 있다
매체명 한국일보
작성일 2002-01-18
*'육식의 종말'편안한 식탁에 앉아 죽은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담배에 이어, 육식(肉食)이 2002년 벽두 한국 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다.
‘잘먹고 잘 사는 법’이란 SBS TV 특집이 방송된 후 백화점 유기농 재배 야채 매장에는 물건이 달려 팔지 못할 정도로 주부들이 몰리고 있다.
‘채식 열풍’이다. 하지만 단지 고기를 끊고 야채를 먹으면 우리는 잘 살 수 있는가.
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세계적 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 의식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한다. 우리는 육식 문화를 넘어서야만 인류를 위한 새로운 과제를 정할 수 있다.”
마침 번역된 리프킨의 저서 ‘육식의 종말’의 원제는 ‘Beyond Beef’, ‘쇠고기를 넘어서’이다. 그는 이 책에서 쇠고기 탐식으로 대표되는 육식 문화가 단지 인간 육체의 건강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지구문명을 위협하는 환경적, 생태적, 경제적 위기는 물론 사회적 빈부격차와 국가간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리프킨은 자신의 다른 저서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등에서 보여준 독창적이고도 해박한 문제의식의 칼날을 이번에는 우리의 식탁에 들이댄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의 수는 12억 8,000만 마리로 추산된다. 소의 사육 면적은 전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한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만성적 기아에 시달리는 13억 명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넉넉히 먹여 살릴 만한 곡식을 먹어치우고 있다.”
수많은 인간들이 곡식이 부족해 기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이제는 한국 등 신흥개발국의 쇠고기 탐식을 위해, 소는 곡물을 사료로 먹어치운다.
리프킨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을 집어삼키는 소’를 비롯한 가축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은 미국 곡물 생산량의 70%, 전체 지구상 곡물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우리는 20세기에 곡물로 사육된 쇠고기를 최상위에 올려놓은 인위적인 새로운 ‘단백질 사다리’를 만들었다. 전 세계곡물이 인간을 위한 식량에서 가축을 위한 사료로 전환된 것은 부의 재분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에 속한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리프킨은 아득히 인류 문명의 시원에서부터 역사적으로 인간과 소의 관계를 고찰한다.
페스트가 휩쓸고 간 15세기 유럽 대륙에서 일어났던 쇠고기 소비의 폭발, 콜럼버스가 쇠고기 맛을 돋구기 위한 향신료를 찾아나섰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후 그 땅이 유럽인의 쇠고기 포식을 위한 목초지로 변해갔던 상황이 극적으로 서술된다.
유달리 스테이크를 탐했던 영국인이 ‘John Bull’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사정, 미국인이 ‘cowboy’가 된 연유이다.
육식은 이제는 잘 알려진 대로 인간의 몸을 파괴시킬 뿐 아니라, 그 영혼마저 황폐화시킨다.
‘붉은 쇠고기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탐하는 육식은 남녀의 성적 차별, 빈부격차의 계급적 차별, 배타적 국수주의를 낳는 일종의 광증(狂症)이라고 리프킨은 분석한다.
그가 여러자료들로 낱낱이 입증해 보여주는 쇠고기 도축 현장, 해체된 소의 몸뚱아리가 꽃등심으로, 스테이크로, 햄버거용 패티로 우리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의 잔인함과 불결함은 차라리 끔찍하다.
여전히 육식으로 스스로의 몸을 보하고 싶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생을 같은 인간,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지속시키고 싶다면 일독할 만한 역저이다.
리프킨은 “지구상에서 축산단지들을 해체시키고 인류의 음식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이야말로 향후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이루어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며 “육식 문화를 초월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원상태로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징표이자 혁명적인 행동”이라고 결론맺는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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