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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여성의전화회지] 진보남성들의 성폭력

by eunic 2005. 3. 24.

[정희진] 진보남성들의 성폭력

아래 글은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회지 '여성의 눈으로' 2000년도3-4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1986년 9월, 나는 대학 1학년이었다.

철부지 신입생이었던 나는 선배들이인천 송도에 놀러가자는 제안에 속아(?) 처음으로 '가투'(가두 투쟁)에 나가게 되었다.
아마 아시안게임 반대 투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경험이 없었던 나는 유인물과 최루탄이 눈처럼 쏟아지는 혼잡한 거리에서 그냥두리번거리기만 하다가 전경에게 잡혔고, 곧장 주로 공장 노동자들을 다뤄서 경찰서 중에서도 가장 험악하다는 00경찰서로 넘겨졌다.

'닭장차'안에서 나는 여성의 성기를 묘사하는 생전 처음 듣는 욕설과 함께 쇠파이프와 무슨 판자 같은 걸로 온 몸을 구타당했다. 닭장차 안에서의 일로 쇼크 상태에 빠진 나는 겁에 질려 이빨이 서로 부딪히도록 벌벌 떨면서 경찰 아저씨의 취조를 받았다.


그때 그 경찰이 했던 말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다.
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뒤통수를 갈기면서 말했다.

"야, 이 년아. 너는 권인숙 이 때문에 산 줄 알아".

그 경찰의 말이 맞다.

그해 여름 권인숙씨의 성고문 폭로가 없었다면 나도 비슷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여성폭력(gender violence)의 피해자들이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상처가 아닌 '전사의 징표'로 여기고 말하기 시작할 때, 그 자신의 치유는 물론 다른 여성들에게도 힘이 된다. 또한 그것은 잠재적 가해 남성들에 대한 경고가 된다.
나는 '여성과인권연구회'라는 모임의 회원으로 지난 98년부터 일본, 대만, 남한, 오끼나와의 진보적 지식인, 사회운동가들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왔다.
이 회의는 지난 냉전 시대 제주 4.3, 광주 5.18, 대만 2.28 사건 등 국가 테러리즘의 문제를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공부하고 각국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이다. 98년 제주에이어 99년 11월에는 오끼나와에서 열렸다. 오끼나와는 일본 군국주의의 내부 식민지로서 일본 전체 미군 기지의 76%가 집중되어 있는 미국,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 전략의 볼모가 된 지역이지만, 그러한 고통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反군사주의, 反제국주의, 인권 평화 운동의 모범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곳이다. 나는 이 회의에 참가하면서 많은 감동과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
이 회의는 이름 그대로 '평화와 인권'을 위한 대회이고 참석한 한국 사람(남성들)은 거의 매일 신문에 나오는, 이름 이니셜만 대면 누구나 아는 '진보', '민주'인사의 대표 격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보여준 한국 남성(일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들의 태도로 인해 어느 여성활동가의 표현대로 인권 대회가 아니라 '성폭력이 관통하는' 회의가 되고 말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 참가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을 당했는데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내 경험만 쓰겠다.
대회 첫날, 나도 잘 아는 유명한 '민중'운동가 A씨가 내게 다가오더니, "(깜짝 놀라면서)아니! 정희진씨가'아줌마'라면 서요? '애 엄마'가 어떻게 이런 곳엘 다 왔어요? 애는 누가 보고? 남편이 허락해줬어? 참 좋은 사람이네." 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화가 나고 모욕감을 느꼈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명색이 여성의전화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여성학을 공부하는내가 그 정도 폭력에 당황하여 어떠한 대응도 못한 것이다(나는 구타당하는 아내들은 더욱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인권과 평화를 다루는 '고상한'자리에 애 있는 '아줌마'가 왜 왔냐는 것이다.
즉, '너 같은 아줌마가 있을 곳은 집이고 할 일은 애 보기'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여성이지만 미혼에다가 뛰어난 미모를 가졌다면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적 영역에 나올 수 있는 여성의 자격은 미혼으로서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해줄 수 있는 여성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이 얘기를'흑인이나 노동자, 장애인, 동성애자, 지방 사람'에게 했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면 왠지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교회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여성운동가들을 '미친년들'이라고 말한 바 있는, 민중의식은 뛰어나지만 그 민중, 인간의 범주에 여성은 포함시키지 않는 사람이었다.

며칠 후, 나는 그에게 '그러는당신은 자식을 어떻게 하고 이 대회에 왔느냐?'고 말하고 사과를 받아냈
다.
그 때 그는, 그 말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자기는 '칭찬'으로 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아줌마' 주제에 그런 대회에 온 '용기'를 칭찬하는 말이었다며 당황해했다. 사실, 그가 진짜 '칭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그에게 여자란 남편의 '허락'없이는 함부로 나다닐 수 없는 가내용 노예이기 때문이다.


B씨는 내가 예전에 그가 쓴 글을 보고 호감을 가지고 있던 현대사 연구자이다.
관광 버스 안에서 그는 내 옆에 있던 어느 유명한 여성활동가에게 느물거리는 눈빛과 목소리로 '내 무릎에 앉으라'고 말했는데, 그의 '성적괴롭힘'(어떤 이들은 '성희롱'이라고도 한다, sexual harassment)은 곧장각국의 여성운동가들에게도 퍼져 그는 순식간에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되었다.
이에 당황한 그는 사과를 한답시고 밤늦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동료의 부축으로 들어옴) 내가 묵는 방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가 사과한 사람은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그 피해 여성과 친한 교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가 정말 사과하고 싶었다면 깨끗하게 당사자에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는 피해 당사자는 못본 척하고 비열하게도 이 사건이 혹시 자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싶어 사회적으로 힘있는 사람에게 변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철저히 자기(가해자)중심적인 해결 방식이다. 그것도 술에 취한 채 '뭐 그렇게 사소한 것 가지고 그러느냐, 누님이 한 번 봐 주쇼'라며 투정을 부렸다.
그가 묵었던 방에서는 남자들이 이 사건을 가지고 여성에게 사과해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로 '격론'을 벌였는데,그들은 하나같이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 중에서도 그나마 양심 있는 한 남성이 피해여성에게 알려준 정보다.
문제의 가해자를 부축하고 들어온 C씨 역시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인물로 아마 한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의 논문을 읽어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한' 진보한다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 숙소에서 새벽 5시까지 얘기하다 갔는데 나는 교수인 그에게, '선생님 글을 많이 읽었습니다'라고 우리가 흔히 지식인들에게 하는 다소 의례적인 그러나 호감 섞인 관심을 표하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는 대뜸 '내가 얼마나 글을 많이 썼는데! '니 까짓게' 읽으면 얼마나 읽어! 아마 1%도 안 읽었을 껄!' 하는 게 아닌가.
그가 너무나 폭력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겁을 먹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그런 태도는 상대방과 대화하려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겨우 내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 식으로 그는 나와 나의 지도 교수, 동료들에게 '여자들이 무슨 역사를 알겠느냐', '00대학은 서구적이다', '인권이면 됐지 페미니즘이 왜 필요하냐', '페미니스트들은 한국 남자하고 얘기를 안하고 외국(서양) 남자만 좋아한다', '당신들이 미국의 의도를 아느냐(나만 안다), 현대사를 좀 읽어라, 피가 거꾸로 쏟을 것이다', '000교수를 여자들이 왜 좋아하냐, 나보다 지식도 없는데' 등등 자신의 열등감과 야만성, 무식함을 한껏 드러내는 폭력적인 횡설수설을 몇 시간 동안 계속 하더니 나더러 술을 달라고 했다.
얼떨결에 내가 멈칫거리자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아니 나 같은 놈한테는 술도 따라주기 싫단 말입니까!'라고 말했다.
자기가 그토록 무시하는 사람에게 존중받고 싶은 이 유치한 이중 심리는 무엇인가? 여기에 쓰기에는 복잡한 얘기지만, 이런 상태는 대개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이나 고문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학대하는 대상에게 갖는 심리이다.
상대를 마음대로 짓밟고 싶지만 상대방이 완전히 무기력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자신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거나 저항해야, 상대방과의 상호 작용에서 생기는 '권력(지배)의 쾌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목석(木石)을 가져다놓고 고문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는 일종의 투사(投射)이다. 자기가 나를 인간 취급하지 않으므로, 자기 수준에서 세계를 보는 그는 나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는 나를 함부로 해도 되지만, 내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도, 참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지레 짐작으로 내게 먼저 화를 내는 것이다.

이는 외도하는 남성들이 의처증인 경우와 비슷한 심리 상태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물론이고 그 방에 같이 있던 나의 동료들 모두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진보'적 지식인의 실체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잘못했지만 나의 충격과 상처가 워낙 컸기 때문에 후속 모임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솔직히 그가 무서웠다.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났을 때 누가 더 당당할 것 같은가?
'맞은 사람이 발 뻗고잔다'는 우리 속담은 권선징악을 위한 말이지 현실이 아니다. 영화 '박하사탕'을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 밖에도 한국 남성 참가자들의 여성 참가자들에 대한 무시(누구나 다 아는 외국의 이론가를 여성들은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지도'하려는 태도 등)와 비하, 타자화하는 시선(여기에는 호기심도 포함된다), 그들이 '재담', '농담'이었다고 주장하는 폭언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오끼나와의미군 기지 반대 투쟁으로 유명한 곳에 답사 갔을 때 현지 운동가가 기지촌 매춘지역을 가리키자,

'어디야? 어디? 오늘 밤에 가야지',

'유부녀와 사진 찍으면 맛이 나나 맛이!(안 나지)',

'젊은 여성하고 다니니 회춘했다',

'여자 참가자들 중 결혼한 사람이 누구냐',

여자 교수를 보고 '이게 웬 떡이냐' 등등...

이같은 한국 '진보'남성들의 성차별적 태도와 국수주의적이면서도 사대주의적인 태도는 외국의 여성운동가, 재일 교포 여성들에게도 악명이 높아서 이 때문에 분노한 외국 여성들이 우리를 찾아와 한국 남성들을 성토하였다.


나는 한국 남성들의 이러한 태도가 강간, 아내구타를 일삼는 남성들, 매춘(買春)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성들, 전쟁시 집단 강간(위안부가 그것이다), 인종 청소를 주도하는 남성 이데올로기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는 남성 파시즘, 성(gender)의 독재, 성의 제국주의이다. 이 지점에서그 거리가 얼마나 짧은가 먼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더욱 더 문제는 이에 대한 여성들의 항의와 불만을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 사소한 걸 가지고 여자들이 감정적으로 삐지고 토라진 것'으로 규정하는 남성들의 한없이 대단한 우월감이다. 대회에서 한 나절 사회를 맡았던 전남대 정근식 교수는 "여성문제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문제이며 이는 '권력' 관계"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나, 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남성들은 얼마나 될까? 민족문제나 계급문제를 가지고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삐지고 토라졌다', '예민한 반응이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제국주의나 자본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감정적인 공격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 정권이나 폭력 군대를 '적대적으로 대해서는 안되고 돌봐주고 보듬어 안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여성 차별 문제를 '정치, 권력 관계'로 정의하는 것을 극구 싫어한다. 여성이 고통받고 차별 받는 것은 '자연 현상'으로서 '당연한 일'이어서 그런가? 그래서 여성들에게 '남성을 포용하고 이해해야지, 적으로 삼거나 공격적으로 나와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준다.


가부장제는 여성이 남성을 적대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이 여성을 타자화하여 차별하고 혐오해서 생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억압적인 '정치 제도'이다. 기존의 민족, 계급 모순을 지적하는 진보에만 만족하는 인권 개념은 인권이 아니라 남성들의 또 다른 특권일 뿐이다. 지배자(가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상대화하고 성찰하기 어렵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나를 부르조아라고 비웃는 내 친구는 자칭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올바른' '진정한' 사회주의자인데, 그는 내게 "우리 나라의 지역주의는 가난하고 열등감이 많은 호남 사람들이 괜히 경상도를 미워해서 생긴 것이며 지역 감정의 주범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아니라) DJ"라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그는 경상도 출신 남성이다)


나 역시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피해자이지만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기득권자이다. 내가 제주도에 갔을 때 나더러 '육지 것들'이라고 비난한 제주 사람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레즈비언 친구는 내가 이성애 제도의 온갖 특혜를 다 누리면서 여성운동가인 척한다고 수시로 나를 비판한다.

또 한 장애여성 친구는 내가 누리는 정상성, 생활의 편리, 이동의 자유는 400백만 장애우들을 소외시킨 결과라고 주장한다. 나는 내가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이등 인간'으로 취급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인정하고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위에 적은 남성들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갖가지 모순과 차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국사회에서 '100% 성골'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폭언했던 C씨도 자신이 '지방'대학 교수임을 무척 괴로워하면서, '당신들은 그서러움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발견하고 자신과 다른 혹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소외받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한국의 '진보'적인 남성들에겐 그토록 불가능한 일일까?

모든 면에서 '중심'이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 남성들은 자신의 타자성을 성찰하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보다. 남성들은 자신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런' 행동이 타인(여성)을 억압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주기 바란다.
14년전, 그 때 나를 때렸던 경찰 앞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혹시 내가 이 글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지금도 약간은 떨고 있다.
또한 권인숙씨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글을 쓰기까지 나로서는 상당한 용기와 자아 존중감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권인숙씨의 투쟁으로 인해 그에게 빚을 졌으며, 그 빚은 이렇게 나의 경험을다른 여성들과 공유함으로써만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랜 망설임 끝에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