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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개인의 취향

by eunic 2005. 3. 21.
개인의 취향은 '별꼴'의 취급을 받기도 한다
는 말이 내 마음을 찔렀다.
그리고 안 팔린 앨범이 5층 높이가 된다는 말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이내 슬퍼지게 했다.
세상의 마음을 얻기란, 꼿꼿하게 자기 색깔 굽히지 않고 세상의 인심을 얻어내기란 왜이리 힘든 것일가?

3집 앨범 낸 정형근


영원한 언더도 좋다! 노래할 수 있다면‥

세상을 사는 데 진지함이 꼭 ‘이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얽혀야 한다는 그 지독한 당위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코드’를 맞춰야 하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취향은 ‘별꼴’의 취급을 받기도 한다. 특히 대중음악인에게 진지한 고뇌와 극한의 실험 정신은 음지의 인생뿐 아니라 경제적 낙오라는 치명적 대가를 초래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세상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 가운데 가수 정형근이 있다.

2집은 딱 100장 팔렸다
야채장사 도배‥궂은일 하며
돈 안되는 실험음악 16년
'별'이 아니라 '별꼴'이 됐다우

그가 최근 발표한 3집 <한송이! 들꽃으로>를 편한 마음으로 몰입해 들을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87년 읊조리는 톤의 포크 음악으로 첫 음반을 낸 그의 2집은 딱 100장이 나갔다. 그리고 1000장은 그의 집에 쌓여 있다. 가수 하덕규는 자신이 지하 1층의 언더그라운드라면 정형근은 지하 5층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지하 5층’의 의미에 관심이 가는 음악 애호가라면 분명 그의 음악과 통하는 게 있을 것이다. 세상의 표피적 외관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 역시 진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48살인 그는 음악 인생을 위해 14년 동안 운전과 방 도배, 야채 장사 등 온갖 일을 했고 지금은 농사를 배우고 있다. 대신 미사리 업소 등에는 단 한차례도 나가지 않았다. 음악은 돈벌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가계의 대부분을 이해심 많은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1700만원을 조달해 3집을 냈다. 그의 노래에선 과격한 열정은 물론 나이듦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이 두가지가 자신의 경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진, 투박하지만 절실한 가사들과 합치되면서 더할 수 없는 진지함을 만들어낸다. 이 진지함에 감응하는 이라면 그가 이번에 소화한 다양한 장르에서 잔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또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통일 문제까지 아우른 다양한 소재에 이르러서는 크게 미소지을지도 모르겠다. “마누라가 바람 피우면 참을 수 있을까 없을까”(횡설수설), “저 바다가 없었다면 공작선도 없었겠지요”(북한에 섬마을선생님)와 같은 부분에선 솔직함을 넘어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힙합과 레게, 펑크, 록, 재즈와 뉴에이지, 프로그레시브 등 그의 3집에 담긴 온갖 다양한 장르를 그는 나이로 설명했다. “방송사도 부장급 이상 되면 주특기가 없어지잖아요. 나이 드니까 ‘이거야’ 하는 게 없어지더군요.” 70~80년대의 투철한 저항 정신에서 이젠 즐길 때가 됐다는 쪽으로 생각도 바뀌었지만 헤밍웨이나 생텍쥐페리와 같은 행동주의 작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내년 2월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모노뮤직드라마 형태로 만들어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그의 노래는 홈페이지( www.ixclub.com/music)에서 들을 수 있다.

글 강성만 기자,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