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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위대한 실패 프랑스 68혁명

by eunic 2005. 2. 24.
위대한 실패 프랑스 68혁명

"이제껏 세계혁명은 단 둘 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인 실패로 끝났다. 둘 다 세계를 바꿔놓았다."

세계체제론자인 이마누엘 월러스틴, 지오반니 아리기, 테렌스 홉킨스가 쓴 '1968년 : 거대한 예행연습' (<반체제운동>수록 논문, 창자과 비평사 펴냄)에서 한 말이다.

이 두 '혁명'이 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나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는 말이다. 1848년 혁명은 1815년 왕정복고 반혁명에 대항해 프랑스 대혁명을 '지양' 했다는 점에서, 1968년 혁며은 전후 미국중심의 반혁명에 맞선 1917년 혁명의 '지양' 이라는 점에서그렇다는 것이다. 1848년은 전통적 좌파를, 1968년은 신사회운동을 제도화했다는 것이다.

'68혁명'은 무엇이었나. 또 30년이 흐른 지금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68혁명'은 프랑스 5월 운동이 대표적이지만, 근본적으론 전지구적 반체제운동이었다. 프랑스 . 미국. 프라하. 멕시코. 도쿄 등 세계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저항은 전면적이었다. 미국의 학생. 민권. 평화운동은 베트남전에서 그 추악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자본주의체제 지배세력에 저항했고, '프라하의 봄'은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와 전통적 좌파를 그 대상으로 했다.
프랑스는 그 둘 모두를 넘어서려 했다.
세계의 양대 지배체제를 변혁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은 소련군 탱크에 짓밟혔고 서구에선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진 못했다. 68혁명이 "실패했다."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월러스틴 등의 "역사적으로 실패한 혁명이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다는 주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프랑스 68년 5월운동'의 주체는 대학생이었다.
그들은 드골정부의 고등교육정책 실패와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문제삼았다. 드골정부는 학생들을 폭력으로 탄압했고, 지식인. 노동자. 등이 학생들과 젊은 노동자들이 파리 시가지를 휩쓸었다.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노학연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국가권력을 장악할 거리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며 자연발생적, 자발적으로 모든 인습과 제도에 저항했다.
5월 27일 드골정부가 던져준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대가로 '그르텔 협정'을 맺고 반역의 거리에 물러선 노동운동 지도부를 제어할 수 없었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6월 13, 20일 치러진 총선에서 드골파는 승리했고 '5월 운동'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5월 운동'은 권력장악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패한 혁명' 이지만, 젊은 세대의 새로운 삶의 지향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혁명을 생각하면 섹스를 하고 싶다."
"나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로" ..., 조지 카차피카스는 <신좌파의 상상력-1968년의 지구적 분석> (이 책은 아직 국역본이 없다.)에서 68년 5월 파리의 대학과 공장 벽에 나붙은 이런 구호가 "미래세대의 생활과 관행을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차피카스에 따르면, '프랑스5월운동' 등은 '구좌파'의 기존 노동조직과 정당 밖에서 출현해 발전했다는 점에서 '신'좌익을 낳았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장악을 목표로 한 '정치적 좌파' (구좌파)와 달리, "일상새활의 영역에서 '참여와 자치'를 추구하며, 새로운 삶의 양식과 자아실현이라는 질적 가치를 역사의 표면으로 밀어올렸다."는 점에서 '신사회운동'의 발원지이자 '문화혁명'이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정수복 정책실장 (사회학 박사)은 " '1968년 5월운동'과 '새로운 사회운동'의 탄생 "(<의미세계와 사회운동>수록 논문, 민영사펴냄)에서 "70년대 들어 펼쳐진 환경. 여성. 반핵평화. 지역자치운동 등은 68년 5월 운동의 상속자로서의 신사회운동이 중요성을 더해감을 보여준 것"이라 평했다.
그러나 98년, '68년 반체제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는 '5월 운동'의 고향 프랑스에서조차 그 세계사적 의미보다 사회 내부 문제에 대한 불만 표출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유럽은 장기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고, 동유럽은 혼란의 와중이다. 한국은 물론, 제 3세계도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운 미국식 신장주의의 공격에 숨통이 끊어질 지경이다.
'68년 반체제운동'은 우리에게 단지 흘러간 역사일 뿐인가.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서양사학)는 "지금껏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정치투쟁 중심이었다."며 "68년 학생들이 던진 민주주의 일상화와 삶의 질이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배영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는 "이른바 한국의 신사회 운동은 경제적 효율과 공평분배, 이를 위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말한다는 점에서 20세기 초 서양 근대사회의 합리성 추구와 맥을 같이
한다"며 발전단계의 차이만큼이나 '신사회운동'의 의미맥락이 서유럽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월러스틴은 말한다. "우리는 1968년 무엇을 위한 예행연습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68년 반체제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겨레 권태선 부국장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