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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테레사에게

by eunic 2005. 2. 24.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테레사에게

[세계일보 2004-08-20 17:15]


테레사? 나는 당신이 실제하는 인물이 아니라 책 속의 한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테레사, 당신은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나에게는 이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특별한 한 사람입니다.
마치 카프카가 쓴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나 루이제 린저가 쓴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처럼 말입니다.

당신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 쿤데라를 나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쓴 모든 책들을 읽었고 그 시간은 나에게 매우 각별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의 일부가 나라는 한 작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작가란 그런 것이지요.
내가 아는 쿤데라는 글을 쓸 때 그 인물의 생김새에 관해서는 거의 묘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어떤 눈을 갖고 있는지 뚱뚱한지 야위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거울을 보며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토마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압니다.

이를테면 당신이, 기르던 개 카레닌을 보면서 질투도 후회도 없는, 또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자발적인 사랑을 느낀다는 사실을 나는 압니다.
당신은 그렇게 내 안에서 살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테레사? 당신은 혹시 당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쿤데라는, 작가가 그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독자로 하여금 믿게 하려 든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쿤데라의 인물들은 작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몇몇 문장, 혹은 핵심적인 상황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당신과 생을 함께했던 토마스라는 인물은 ‘한 번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문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당신, 테레사는 ‘뱃속이 편치 않을 때 나는 꾸르륵 소리’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토마스의 아파트 문턱을 넘어섰을 때를 혹시 기억하나요? 그때 당신의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당신은 고향을 떠날 때 플랫폼에서 샌드위치를 먹은 것을 제외하곤 그날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토록 보고 싶던 토마스를 만났을 때 그만 꾸르륵 소리부터 들켜버린 것입니다. 당신이 거의 울음보를 터트리기 직전에 토마스가 당신을 껴안아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그러니까 테레사, 쿤데라의 말에 따르면 당신은 ‘근본적인 인간의 체험, 즉 영혼과 육체 간의 화해 불가능한 이원성이 급작스레 드러난 상황으로부터 태어난 인물’인 것입니다.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테레사 당신은 그 중 ‘무거움’에 속하는 사람이었죠.
그것이 당신을 창조해낸 쿤데라의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당신이 사랑한 사람 토마스가 에로틱한 우정을 나누었던 사비나라는 여인은 ‘가벼움’의 메타포이기도 했습니다.
테레사,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하며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요?
무거운 삶을 살았던 당신은 혹시 그 대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처럼, ‘무거운’ 삶을 택한 사람이기도 하답니다.



조경란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