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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일회성과 영원>

by eunic 2005. 2. 2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이재룡 옮김 , 민음사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한 횟수로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듯 영원성에 못박힌 꼴이다.
이런 발상은 끔찍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 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예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받기를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력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 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 - 어두움, 두꺼운 것 - 얇은 것, 뜨거운 것 - 찬 것, 존재 - 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긍정과 부정의 극단적 양분이 유치할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이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 -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