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말 지에서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 글을 읽으면서 내안에 잠들어 있던 마초성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화들짝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웹서핑을 하다가 이 글을 다시 알게 되어서 그 옛 느낌에 젖다가 이렇게 올려 본다. 몇 년이 지난 아직도 이 글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우스워진다. 괜히 술한잔 걸친 이제 곧 해뜰 시간에.
'그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108가지 방법 (2)
권혁범
제1부 동등한 그러나 불평등한 싸움
<씨네 21>에 실린 최보은씨의 피를 토하는 글, 김규항씨의 글에 대한 재반론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강자는 대체로 비판에 대해 차분하게 반응하거나 심지어 '쿨'하다. 하지만 약자들은 일단 상처받는다. 그래서 냉정하게 반론하기 어렵다. 유학시절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에 대해 논쟁할 때 미국 보수주의자로부터 공격받으면 난 일단 이성을 잃었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반박을 못하고 '헉!'하며 분노의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결국에는 "너희들은 제국주의의 주구에 불과해!"라고 외치며 '깽판'을 놓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냉정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논쟁을 즐겼다. 왜 언제나 논쟁의 구도는 '강자'는 선언하고 '약자'는 그 말을 따라가면서 반박하는 형태가 될까? 왜 언제나 비판당하는 약자 쪽은 더 많은 말을, 더 많은 논리를 준비해야 하고, 비판하는 강자들은 검증 없이 그렇게 자신의 주장에 대해 당당할까.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가 '그 남자들'을 위한 언어니까?
이런 면에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같은 지면을 빌려서 논쟁할 수 있다는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두 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과 맥락은 이미 여성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 남자에게 '그놈' '그새끼'라고 하는 것과 여자에게 '그년'이라고 하는 것은 평등한 차원의 욕지거리가 아니다. (<씨네 21>이 김씨의 첫 번째 글을 실은 것은 '사상의 자유'를 지키는 진보적인 영화지로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놈들과 그년들'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글은 사상검증의 전체주의적 욕망과 성적 모욕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공론의 일부가 되기가 어렵다). 국회의원도 장관도 사장님도 그가 익명의 여성이라면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조잡한 물리적 싸움에서는 철저히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노동자가 사장님에게 저항하는 것과 사장님이 노동자 멱살을 잡는 것이 동등한 차원의 싸움이라고 믿는 진보주의가 있을까?
그런데도 왜 한국의 남성-진보들은 틈만 나면 '부르주아'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선동하고 있을까? 혹 그들은 '부르주아'가 싫어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질서를 마음껏 위반하고 유린하는 똑똑하고 '잘난' 여성 지식인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괜히 양념으로 '가부장 좌파'에 대한 비판을 끼어 넣은 게 아닐까? 그들의 페미니즘 비판에는 똑똑한 여성에 대한 근본적 혐오감이 깊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관심을 끌기 위해 만만한 약자에게 의도적으로 시비 거는 걸까?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방법, 참으로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그러니 차라리 이제 여성주의자들도 "그래! 나 부르주아다! 나 주류다! 어쩔래!" 혹은 "그래, 나 서구 페미니즘 이론에 감명 받았다! 당신의 마르크스주의는 하회마을에서 왔냐?"고 따지면 어떨까? 페미니즘만 페자만 들어도 괜히 기분 나쁘고 그걸 후려치고 싶어하는 감정적 충동을 느끼는 남성들은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깊은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제2부 사내들의 기가 막힌 자기방어
내가 알기로 {말}지의 독자의 99%는 페미니스트 혹은 그 동조자다. 그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 104가지를 모두 정리하고 싶지만 말지의 '상업적 장래'를 위해 다음 5가지만 소개한다.
1. '난 노력하는 마초' 뿐만 아니라 "난 성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난 페미니스트의 기본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요즘 여성운동은..."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유행이다. 결국은 여성주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 위해 전채(appetizer)를 먹이는 거니까 조심해야 한다.
2. "내가 얼마나 집에서 가사노동을 열심히 하는데요!" 혹은 "난 8년째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오고 있다"는 주장. 다음에 즉각, 그래서 "난 페미니즘을 비판할 자격이 있다!"는 논리가 튀어나오기 위한 수순이다. 가사노동이 그렇게 중요한 기준이라면 이땅의 모든 여성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는가!
3. "나도 딸이 있지만..."
이것 역시 전초작업이다. 딸 사랑과 여성주의가 무슨 관련이 있나? 부드러운 가부장도 딸을 애지중지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런 얘길 많이 했군.
4. "여성운동과 인간해방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옛 농담에 저기 군인과 사람 한 명이 간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 여성과 '인간'이 걸어간다. 여성은 인간이 아니니까.
5. "오, 어머니!" 아니 "오, 외할머니!"
요즘 싹수없는 '맹랑한' 젊은 여성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자기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찬양하라! 그들의 기를 죽여라! 그리하여 '이기적인' 여성들에게 죄책감을 유발하고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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