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 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 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 시집 <배꼽>, 창비
문인수 /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배꼽』, 미당문학상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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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나 가방을 살 때는 "아, 저거다!" 하고 협상도 안하고 가격 묻고 돈 쥐어주고 나오는 편인데, 책은 몇년이 지났건만 다 읽어야만 사게 된다. 잘못 산 옷은 잠옷이나 츄리닝으로 변신이 되지만, 잘못 산 책은 정말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오기 때문이다. 은희경 이름만 믿고 산 "비밀과 거짓말"이 꽂혀있는 걸 볼 때마다 손이 뒷목으로 자연스레 간다. 그래서 주말에 교회 끝나고 종로 교보문고에 가서 하루종일 대여섯 권을 속독으로 읽고 온다. 읽고 온 다음에 인터넷으로 가장 싼 가격을 검색해서 사곤 했는데, 이 시집 <배꼽>을 읽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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