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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나눔문화 강연 폭력의 성별화와 지배의 성애화

by eunic 2007. 7. 24.

http://www.nanum.com/zb/view.php?id=peace_2&no=104

여성주의 평화정치학
[4기 5강] 폭력의 성별화와 지배의 성애화 _ 정희진 | 서강대 여성학 강사
편집자주 - 기지촌 여성들과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인권상담을 통해 여성운동을 시작한 정희진 선생은, 현장에서 깊어진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뒤늦게 여성학 공부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 동안 한겨레신문 칼럼과 수 차례의 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통용되어 오던 성폭력적 언설과 담론들, 문화현상들을 분석하며, 통렬한 비판을 해 온 정희진 선생은 이번 강연에서,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폭력적이고 가부장제적인 우리 문화를 성찰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강연을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전업주부이자, 비정규직(시간강사)‘라고 소개한 그는 한국사회를 떠받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계급이라고 말하며, 처음부터 날카로운 문제의식 가득한 언어들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우리나라를 세계지도에서 보면 극동(아시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 기준입니다. 영국이 자기 중심으로 침략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극동아시아라고 한 것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이것을 말하면 남학생들은 한국이 아시아,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렇게 보면 동남아시아가 소외될 것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인식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명쾌한 강의에 많은 여성 수강생들이 속시원해 했습니다^^

“모든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하나 분석의 대상입니다.”라고 말하는 정희진 선생은 얼마 전 강연에서 자신이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소수자,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들의 일상언어도 폭력적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 강연에서 시간이 부족해 화장실 갈 시간을 5분으로 정했다가, 강연 후 장애인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은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역시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폭력의 성별화

폭력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로 들어가면서 정희진 선생은, 폭력이 매우 성적(性的)인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남성들은 폭력을 행사할 때 상대 피해자를 여성화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적국 영토를 점령하는 것을 상대국 여성을 짓밟는 것으로 비유한다고 합니다. 폭력의 가해자는 남성이고 그 피해자는 항상 여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정희진 선생은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서 불리워졌던 'fucking USA'라는 노래로 예를 들며, 여성의 몸을 영토화하는 사고방식이 소위 진보적이라는 민족주의 운동세력 내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여성의 몸은 지금까지 여성의 것이 아니라 국가, 민족, 남성의 것이었습니다.”

폭력이 성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남성들의 의식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남성들은 화가날 때, 즉 폭력적일 때, 성욕이 함께 상승합니다. 여성들은 그 반대입니다. 화가나면 성욕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할 때, 여성의 저항은 남성을 흥분시킵니다. 남편은 ‘부부싸움 후에 성관계로 화해했다’고 말하지만, 아내는 ‘구타 후 강간당했다’고 합니다.”
“남자들끼리 얘기합니다. “어디까지 갔냐?” 이 말은 육체적 관계의 진도가 얼마나 진행되었느냐는 말입니다. 남성들은 ‘섹스하면 갈 때까지 간 거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이 일상적으로 여성과 맺는 것은 ‘여성의 몸을 어디까지 정복했는가’입니다. 남자들은 대화나 생각을 나누는 것보다 육체적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지배의 성애화

“폭력이 성을 구분하듯, 지배는 성애(性愛,erotic)화 됩니다. 1992년에 동두천에서 미군 병사가 기지촌 여성 윤금이씨를 성폭행한 후 살해했습니다. 이때는 미국이 강간범이고, 한국이 피해자가 됩니다. 전대협에서는 “미국이 한반도를 강간했다. 그녀 몸에 뿌려진 하이타이는 한반도에 뿌려진 정액이다”라고 했습니다. 여성은 같은 시민이나 국민이 아니라 한반도이고, 한반도는 남자가 가진 재산입니다. 기지촌에 가면, 술집 문 앞에 ‘내국인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여자는 국민 아닙니까? 기지촌은 성매매 여성의 마지막 종착지입니다. 살아서는 사람취급도 못받던 기지촌 여성이 죽으니까, 국민의 성녀가 되었습니다. 여자는 죽어야 시민권을 얻나 봅니다.”

“한미관계에서 한국은 피해자입니다. 민족주의자들은 그에 대한 복수로서 'fucking USA'를 부르짖습니다. 미국을 여성화하는 것입니다. 힘이 약하면, 힘을 기르든가 하지, 왜 상대국 여성을 성폭행합니까? 이런 성적 메타포는 비일비재합니다. 한국 남성들은 미국 여성들과 자고 싶어 합니다. 강대국 여성과 자는 것으로 강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여성과 잠으로써 미국을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위입니다. 공적인 지배관계를 성애화(erotic化)하는 것입니다. 결국 탈정치화시키는 것입니다. 미국 남자가 한국 여자를 강간했으면 보호하든가 하지, 왜 미국여자를 강간하려고 하는가? 자신도 제국의 남성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남성연대이지 반미가 아닙니다.”


폭력과 평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정희진 선생은 평화의 반대 개념인 폭력에 대해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성찰을 시도했습니다. 프란츠 파농의 “약자들의 폭력은 약자들의 자기 선언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폭력에 대한 통념을 공박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폭력의 반대 개념인 ‘대화’에 대해서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평화의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남자들, 또는 지배자는 무질서와 혼란, 망설임, 주저, 갈등을 회피하고 부정합니다. 질서 잡힌 것을 평화로 여깁니다. 그러나 질서는 때론 폭력입니다. 파시즘은 질서와 통합니다. 갈등 없는 상태가 평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오해입니다. 내부식민지 즉, 전업주부 여성, 어머니를 내부식민지로 둔 사람만이 쿨cool(냉정, 평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된 평화입니다.”
“폭력의 반대말은 대화입니다. 하지만 대화가 항상 비폭력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화는 나와 상대를 변화시키는 격렬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다른 내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몸이 변하는 것, 즉 변태입니다. 애벌레가 고치를 깨고 나와 나비가 되는 것, 허물을 벗는 것, 형태를 탈피하는 것. 이게 대화입니다. 대화는 과거의 자기와 단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고통이 머리 속에 집을 짓는다고 하죠? 변화 후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고 나면, 페미니즘적 인식이 생기고 나면, 가부장제에서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저는, 저를 흔들지 않는 책은 읽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걸 두려워하는 것은 죽은 삶입니다.
진리를 주장하는 자를 의심하십시오. 평화라는 것은 신념과 회의가 조화되어야 합니다. 통일도 여럿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여럿이 되는 것이 통일입니다. 여성주의가 들어가야 폭넓게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희진 선생은 여성주의는 저항이 아니고 협상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으로 하여금 자기 위치를 깨닫게 하고, 모순과 혼란을 견딜 힘을 갖게 하는 것’이 여성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성주의는 anti(反)가부장제가 아니고 그것을 뛰어넘어 그것을 우습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성의 모성에 대하여

한편 발표 후에는 생명과 여성의 모성에 대해 여성주의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희진 선생은 어머니의 두 가지 의미, ‘제도로서의 어머니’와 ‘경험으로서의 어머니’로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 여성의 성역할로서 모성이 여성에게 짐지워지는 것을 비판하였습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어머니는 남성의 어머니입니다. 여성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어머니는 아들편입니다.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 수록 여성의 지위가 낮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통해서 보상 받을 뿐입니다.”
“남자들은 아줌마, 담배 피우는 여자, 할머니는 여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에게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창녀입니다. 여성은 어머니-성녀이자 창녀, 마돈나는 이 두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한 성역할로서 어머니는 쉬는 곳이고, 창녀는 노는 곳입니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역사상 최저입니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신혼부부 한쌍당 1.5명의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1.17명입니다. 이것은 세계 최저입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사교육비나 육아 걱정 때문이 아닙니다. 결혼을 안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은 것입니다. 여성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어머니를 개인, 시민으로 봐달라고 투쟁해 왔습니다. 생명페미니즘의 경우 어머니가 제도화되는 게 나쁘다는 것이지, 양육하고 보살피는 노동을 하는 어머니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닙니다. 그것을 이용하느게 나쁜 겁니다. 양육과 생명살리기와 보살핌의 노동의 가치를 사적영역에서 공적영역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8시간 노동제는 전업주부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여성들에게 “입닥쳐”하기 위해 ‘생명’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느 강의보다도 더 활기넘치고 시끌벅적한 질의응답시간이었습니다.
평화는 소란스런 대화에서 온다!


두 시간 반이 넘는 긴 강의였지만,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평화와 폭력, 대화에 대해 새롭게 개념 정의하는 가운데, 참석자 중 여성분들은 여성 성역할 때문에 억눌렸던 가슴을 펴면서 통쾌한 한풀이를 경험했습니다. 한편 남성들은 성찰의 기회를 얻어 가부장제적 남성중심 시각을 교정할 수 있었습니다.



200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