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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논문] 헌법의 탈식민화와 ''현실화''를 위하여

by eunic 2007. 3. 8.

* 심포지엄: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헌법의 탈식민화와 ‘현실화’를 위하여

한국헌법의 남성성과 국가주의의 문제



정희진(서강대 강사․여성학)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전태일(1970)


실제로 법관들은 논리보다는 자신의 직관에 의존한다.

법리보다는 판사 개인의 가치관이 많이 반영된다. 논리는 그 이후에 만들어진다.

- 김두식(2004, 한국의 남성 법학자)


여성주의는 객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여성주의는 무전제의 전제에서 출발하지도 않고,

그 어떤 전제도 없는 청중들을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청중은 없기 때문이다.

- 캐서린 매키넌(1987, 미국의 여성 법학자)







1. 문제제기


경험이나 현실은 투명한 실체가 아니라 그 기억 자체가 이미 해석이기 때문에, 인식자의 사회적 위치(positioning)에 따라 현실은 매우 다르게 구성된다. 그러므로, ‘객관적 현실’은 존재하거나 정의(定義)되는 것이 아니라 개입․경합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언설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현실’은 무엇이 현실적인 것인가, 누구의 현실인가를 둘러싼 사회적 주체들의 개입과 투쟁을 기다리는 언제나 미지의 것이다. ‘현실’은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정치적 입장이 표출되는 담론의 경합장이며, 동시에 그러한 담론에 의해 사회적 주체들이 종속되고 갈등하며 새로운 국면을 꿈꾸는 인간 몸의 재현이고 존재하는 세계이다(Csordas).


한국사회에서 ‘큰 정치’와 ‘작은 정치’의 구분은 모든 인식론의 출발점이다. 정치(학)는 대개 ‘현실정치’ ‘제도권정치’를 의미하며, 다른 차원의 정치는 ‘현실정치’를 중심으로 수렴(흡수)되거나 위계화․사소화된다. 한국사회에서 ‘현실정치’는 비장애인, 이성애자, 중산층 남성들이 주로 참여하는 공적 영역에서 제도화된 형태의 정당정치를 뜻한다. 이러한 ‘현실정치’는 압도적으로 남성의 게임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며, ‘현실’은 주로 이들에 의해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현실정치’의 틀에서는, 기존의 자연스럽게 선호된다고 가정되는 지배적인 의미들을 생산하고, 그것에 우선순위를 부여함으로서, 특정한 사회구조를 유지․재생산한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형식의 정치 중 하나이며, 가장 가시적인 따라서 가장 협소한 형태의 정치이다. 어떤 정치세력에게는 선거시기가 ‘정치의 꽃’이고, 어떤 정치세력에게는 혁명이 가장 치열한 정치적 순간이라면, 어떤 사람들에게는--대부분의 사람들--24시간, 일상의 매순간이 정치적 시간이다. 예를 들어, 성별 제도나 이성애주의, 비장애인 중심주의 같은 정치학은 너무나 정치적이어서 정치 외부에 있으며, 이제는 거의 무의식적 차원에서 재/생산되고 있어서 ‘의식화’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정치학들이다. 이러한 정치학들은 기존의 ‘현실정치’와 대립하거나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들이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구조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국민’의 일상생활․정서․의식 구조․사고방식에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00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오는 2020년에는 자녀 없이 부부만 살거나 혼자 사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특히 1인가구 중 독거노인 가구의 점유율은 40%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현상은 고령사회 진입, 기존의 남성가부장 중심의 가족 해체, 이혼율 증가 양상 등이 두드러지면서 부부와 자녀가 동거하는 ‘정상'가정이 급속히 줄어들 것임을 뜻한다. ‘가정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삼는’ 다시 말하면, 가정 내 여성노동을 성역할 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는 현재의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것이라는 의미다.

2005년 현재 한국사회의 각종 지표를 살펴보자. 여성 가구주는 전체 가구주의 19.5%인 370만 6천명으로 20년 전 보다 3.6배 증가했고, 1인가구가 15.5%, 부부가구 14.8%, 어머니나 아버지 한 명과 자녀로 이루어진 ‘한(single)부모’가구가 9.4%이다. 결혼하는 사람 100명 가운데 8명은 국제결혼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혼율 3위이다. 지난 34년간 인구 1천 명당 이혼 건수는 7배 증가했지만, 혼인 건수는 30% 이상 줄었다. 작년에 이혼한 부부 중 동거기간이 20년 이상인 황혼 이혼 비중은 18.3%로, 23년 사이에 4배 증가했다.1) 여성 1인당 출산율은 1.15~1.17명으로 전세계적으로 당대 최저이자, 근대 국민국가 역사상 최저이다.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100년 한국의 인구는 1,621만명으로 감소된다. 한국은 2004년말 현재 42만명의 외국인이 취업하고 있는 유엔이 정한 이민국가다(유엔은 이주노동자를 이민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수치는 ‘공식’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특히, 이주노동자는 100만명을 훨씬 넘는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산업구조, 지구화, 여성의식의 변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 모든 변화들을 주도하는 것은 여성이다. 이제 여성들은 더이상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 ‘집안’ 일과 ‘바깥’ 일, 육아의 삼중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현모양처 겸 커리어우먼’이 되라는 이중 메씨지 사이에서 분열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인도인데, 대신 인도는 기혼여성의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한국 여성들은 자살하느니 이혼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의 구조와 내용은, 119조 2항2)과 같이 경제정의의 보루가 되거나 근대 자유주의 철학의 급진성을 보여주는 ‘헌법정신’을 담지한 조항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남성 국민’의 이해와 관심사가 지나치게 보편화,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다. 또한 지구/지역화(glo/calization) 시대에 혈연적(따라서 인종적) 민족주의적이면서도 서구중심의 근대성 담론을 여과없이 차용하고 있다.


이 글은 기존의 ‘현실정치’ 중심의 개헌 혹은 호헌 논의를 넘어서, 여성 혹은 타자(the others)의 시각에서 현재 헌법 구성 구조와 조항들을 개략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가라는 질문,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는 그 사회의 가치관과 민주주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헌법 다시 보기(rethinking, remapping)’ 같은 시민사회의 개입과 ‘다른 목소리’가 현실정치의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로 축소되는 것은, 기존의 ‘남성국민’ 중심의 정치질서가 강화되는 것으로, 이 프로젝트의 의미와 가장 거리가 멀고, 가장 위험한 방식의 논의라고 생각한다.



2. 여성 혹은 ‘비국민’의 시각에서 헌법을 문제화할 때의 쟁점들


여성 혹은 기존 국민의 범주에서 제외된 사회적 타자의 시각에서 헌법을 분석할 때, 다음의 네 가지 차원의 논의가 가능하다.


첫째는, 비록 규범적 차원일지라도, 자유와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정신’은 민주주의의 기본 근거가 된다. 최근 대학 총장들의 기부금 입학제도 건의에 대해 ‘신자유주의 신봉자’라고 알려진 김진표 교육부총리조차,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며 반대한 예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근대성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근대가 포기할 수 없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여겨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이상에 대한 합의와 믿음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지향 때문이다(김은실). 즉 흔히 제기되는 논쟁인,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근대가 오지도 않았다 혹은, 서구합리성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합리성이나마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다는 측면에서,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보편적 권리가 사회적 약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입법투쟁보다는) 기존 조항에 대한 해석투쟁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한상희). 보편주의(universalism) 혹은 자유주의(individualism)는 여전히 급진적이다(1970년 전태일이 분신하며 외쳤던 것은,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라”가 아니라 “제대로 지켜라”였다).

두번째는, 위와 반대로, 근대는 실재에 대한 열정일 뿐,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근대적 보편주의가 전제하는 강자 중심의 같음(sameness)을 문제화하는 것이다. 기존의 보편주의(uni/versalism)와 개인주의(in/dividualism) 개념은 백인 남성의 입장에서 구성된 것으로, 실제는 정치적인 이해에서 구성된 것이지만, 사회적 진공 상태(disembodied)를 가정한 논리다. 모든 개인은 자유주의 철학이 의미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헌법의 보편주의는 일종의 ‘신의 위치(God trick)’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현실초월적 보편주의다. 제17조와 제21조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개념3)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보편주의가 보편성이 구성된 역사적 과정을 문제삼기보다는 고정된 보편성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었다면, 다중 보편주의(poly/versalism), ‘횡단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에서는 차이를 기준으로 보편성을 끊임없이 해체․재구성한다. 다원화하면서 보편화하는 것이고, 초월적 보편이 아니라 소통가능한 보편을 지향한다.

보편주의는 근대적 인권 개념의 성과이자 한계이다. 보편적 인권은 피억압자에게 인권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만, 성차별주의(인종주의, 이성애주의...) 등 구체적인 제도들의 사회적 작용을 고려하여 맥락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인권의 보편성은 억압세력의 지배전략이 될 수도 있다. “빵을 훔친 사람은 징역에 처한다”는 법은 평등하지 않다. 부자는 빵을 훔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이처럼 개인이 갖는 권리의 내용은 그 개인이 속해있는 성별․인종․계급 등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인권은 사회적 제 권력관계와 관련 없이 추상적․초월적으로 선재(先在)하는 개념이 아니라, 구성되고 쟁취되는 경합적 가치이다. 인권은 언제나 피억압 집단의 개입을 기다리는 과정적 개념인 것이다.


세번째, 마이클 왈저의 인권개념이 변화하는 과정, 즉 ‘인권의 운동’ 논의를 헌법에도 적용한다면, 헌법의 운동과정의 맥락성과 가변성을 논의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헌법정치보다는) 일상정치, (헌법적 의제보다는) 사회적 의제로서의 헌법 논의가 중요하며, 권력구조에 대한 규정보다는 사회적 가치와 규범으로서의 헌법이어야 한다(박명림, 홍윤기). 현행 헌법의 객관성은 권력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는 사고가 필요하다. 과정으로서 헌법,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의(one of them) 담론으로서의 헌법, 경합적 가치로서의 헌법, 구현이 아니라 계속 재해석되어야 할 투쟁대상으로서 ‘유목적 헌법’이 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네번째는 위치의 정치로서, 헌법의 구성과 조항의 성별(性別, gender)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는 성별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정치로서) 동성애자․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가치지향으로서) 생태․평화․문화의 시각에서 헌법 다시 읽기가 가능하다.



3. 헌법의 성별성


첫째, 헌법은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사회적 권력관계의 문제(양적인 문제)이다. 헌법은 누구의 목소리를 반영하는가?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성원권은 결국 ‘국민’을 의미하는데, 국민의 범주는 계급과 젠더의 제한을 받는다. 아래 표와 같이 헌법은 ‘남성국민’의 관심사, 권력구조에 대한 조항이 과도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112조 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 헌법에 이런 내용이 굳이 필요할까? 또한 이러한 조항에서 규정해야 할 것은 임기뿐만 아니라, 인구비례에 의한 할당제 등, 평등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야 한다. 권력기관의 선출과 임기 등에 관한 조항은 매우 상세한 반면, 평등에 대한 조항은 대단히 간략하다. 제2장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 조항의 내용은 하나의 독립된 장(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신분은 지역, 장애, 성적 지향, 학력, 학벌, 외모, 직업, ‘국적’, 인종 등등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유연하게 정리할 부분은 지나치게 구체적인가 하면, 구체적이어야 할 부분은 지나치게 유연하게 구성되어 있다”(정태호).


차별받지 않아야 할 사회적 신분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선언적․포괄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가는 논쟁적인 문제이다. 구체적인 제시가 오히려 해석의 여지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의 사회적 신분이 비가시화․탈정치화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에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평등에 관한 조항은 차별 금지 조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럽 헌법처럼(최윤철) 평등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제시되어야 한다. 평등을 같음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공정함과 차이 존중의 문제로 다룬다든가(다를 수 있는 권리로서의 평등), 성매매처럼 여성과 장애남성 등 사회적 약자끼리의 갈등문제에 대한 규범과 해결방식이 제시되어야 한다.

규정 내용

조항

조항 갯수

전문

제1장

총강

1조 - 9조

9개항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10조 - 39조

40개항

제3장

국회

40조 - 65조

26개항

제4장

정부(대통령, 행정부)

66조 - 100조

35개항

제5장

법원

101조 - 110조

10개항

제6장

헌법재판소

111조 - 113조

3개항

제7장

선거관리

114조 - 116조

3개항

제8장

지방자치

117조 - 118조

2개항

제9장

경제

119조 - 127조

9개항

제10장

헌법 개정

128조 - 130조

3개항

부칙

1조 -6조

6개항



둘째, 헌법은 정치적으로 중립적․객관적인 텍스트가 아니다.


전문(前文)의 국가주의․인종주의 정치학은 비판받은 바 있다(황해문화 2004). 여기서는 성차별 조항 중심으로 살펴본다.


* 제32조 ④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 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6조 ①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②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 인간은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성차별사회에서만 양성으로 구분한다. 인도의 히즈라(hijra), 유넉(eunuch), 양성구유자(兩性具有者, hermaphrodite), 트랜스젠더 등은 남성과 여성의 구분 자체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양성 조항은 이들 ‘제3의 성’의 인권을 박탈한다. 또한 이 조항은 동성간 결혼을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정신’의 이름으로 막고 있다. 양성평등의 이념 자체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남성중심적 같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모성 역시 권리가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여성의 모성, 출산능력을 권리가 아니라 보호로 보는 것은, 남녀의 차이에 대한 남성의 입장에서의 해석이다.


* 제39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 39조는 논란이 그치지 않는 군사화된 시민권 조항이다. 이 조항은 모병제 도입이나 여성에게 병역의 의무가 부과된다고 해도, 환경․생태․평화주의 입장에서 계속 문제시될 조항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4대의무는 ‘국방’, 교육, 근로, 납세이다. 한국에서 사회적 구성원(membership)으로 인정받는 시민권을 획득하는 방법은 병역의무 이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남성과 여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 이 조항은 국방의 ‘권리’가 없는 여성과 장애인은 국민인 비장애 남성의 ‘보호’(지배)를 받는다는 뜻일까? 아니면, 여성과 장애인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방법은 “법률이 정한 바”가 없기 때문에, 여성과 장애인은 국민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근대 이후 여성은 공사분리 제도/이데올로기를 통해 남성과는 다른 형태로 국가, 사회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공적 영역은 남성들의 세계로 남성만을 주체로 세우기 때문에 여성이 공적 영역과 관계를 맺거나 경찰, 법 같은 공적 자원을 이용하려면, 가족제도를 통해 남성을 매개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남성의 시민권은 가족제도와 관련이 없다. 여성은 성역할(gender role) 노동을 통해 국민인 남성의 요구, 욕구에 부응함으로서, 남성 국가의 인정에 의해 ‘국민’이 된다. 북한사회(특히 식량난 이전)는, 젊은 여성이 ‘영예군인’(상이군인)이나 북송 장기수와 결혼하도록 적극 장려하였는데, 이는 남성을 통한 여성의 애국행위의 가장 극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체제를 초월하여 어느 사회에서나, 국가에 헌신한 남성들에게 젊고 교육받은 여성과의 결혼은, ‘희생’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상으로 간주된다. 한국사회에서 젊은 남성들이 군대에 가면, 또래 여성들은 애인으로서 성역할을 강하게 요구받는데, 이는 개인의 연애가 아니라 탈영 같은 일탈을 방지하는 일종의 간접적인 국방행위로 인식된다.

군가산제 논쟁 때마다 등장하는 남성 논리인 “여자들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한다”는 비난이 있는데, 근대민주주의사회에서 의무와 권리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출 경우, 국가는 개인을 ‘국민’ ‘시민’으로 인정하고 국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의무는, 안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어도, 이행했다고 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군가산제 제도는 여성과 장애인 등 처음부터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 사람들에게 그 면제된 의무를 안했다고 처벌하는 격으로, 면제의 기준을 문제삼아 여성과 장애인의 징병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면제된 의무를 안했다고 해서 개인의 권리와 생존권(취업권)을 박탈하거나 감수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배은경). 여성과 장애인은 ‘특권층’이어서 병역의 의무가 면제되었다기보다는, ‘2등시민’이므로 ‘군가산제라는 권리’도 ‘병역이라는 의무’도 박탈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의무나 권리는 국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국민의 기준에 미달하는 2등시민에게는 의무도 권리도 없다. 군가산제 논란의 본질은, 남성들간의 계급 차이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치환(displacement), 전가된 것(한국사회의 많은 사회적 모순들이 이같은 젠더적 구조를 갖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이다.

군사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할 적, 지키는 주체, 보호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이 세가지 요소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보호자 남성, 피보호자 여성”이라는 성역할의 전형(stereo type)이다. 군대의 존재는, 남성이 군대에 복무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남성다움을 검증할 수 없다고 느끼도록 해야 하고, 그들의 경험은 여성에 대한 지배와 보호, 여성들로부터의 고마움에 의해 증명되어야 한다(권오분). 적과 피보호자를 상정하는 군대가 존재하는 이상, 여성이 군복무에 남성과 평등하게 참여한다고 해서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성별에 상관없이 전국민 징병제인 이스라엘이나 북한의 사례는, 군대 자체가 성별화되었기 때문에 여성이 병역을 이행하려면 여성성을 부정해야 하고, 배제되면 2등국민이 되는 이른바 ‘같음과 다름의 딜레마’가 반복된다(정추영). 평등의 기준 자체가 남성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때 평등은 공정함(fairness)이라는 정의(justice)가 아니라, 남성과의 같음(sameness)을 기준으로 한 남성정체화이다. 때문에 여성의 ‘평등한’ 군대 참여는, 역사상 어떤 국민 국가에서도 채택된 적이 없고, 어떤 여성해방이론에서도 주장된 일이 없다.

군대 내부의 여군에 대한 성차별, 성폭력과 남성 동성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여성화는, 여성의 군 참여에 상관없이 군대가 무엇을 지향하는 조직인가를 잘 보여준다. 1962년에서 72년까지 ‘미스 여군 선발대회’가 있었고, 1987년까지만 해도 장교가 되고자 하는 여군은 자녀를 출산할 수 없었다. 현재 군대 내 여성인력은 대부분 이른바, 간호․전산 같은 ‘여성직종’으로 격리되어 근무한다(국군간호사관학교의 여군들은 군인이 아니라 ‘병사들의 어머니’로 간주된다). 여성은 전방이나 전투지역에서 근무할 수 없으며, 포병이나 기갑 분야에도 배치되지 않는다(여성이 전차를 타면, 전차가 내려앉는다는 금기가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치적․군사적 갈등은 정치적 주체인 남성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비정치적인․비역사적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에, 전선(戰線)의 개념은 남성 대(對) 남성의 관계를 전제한다. 여성 대 남성은 전선을 구성하지 못한다. 여성 군인을 전투에 배치하면 군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여성이 적의 포로가 되거나 성폭력을 당할 경우 남성 국가는 치명적인 심리적 피해를 받기 때문이다. 또한 전방에서 여성의 존재는 성적 추문이 일어나거나 군의 일사불란함을 방해한다고 여겨지고, 이성과 감성의 근대적 이분법과 이러한 이분법의 성별화된 이미지로 인해 여성이 있으면 비이성적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상상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성성은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전제로 구성되기 때문에 “같은 참호에 있는 여성은 남성의 자아를 짓밟고”, 여성이 전투직에 종사하는 것은 남성정체성을 위협한다.

한국 남성들의 군입대는 일종의 2차적 오이디푸스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데, 군대는 남성성을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에, 군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에 도달하지 못한 남성은 여성화 혹은 비(非)남성화 된다.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 남자, 사람이 된다”는 일상적 언설은 병역의무 수행이 시민권으로서뿐 아니라 문화․정서․의식 등 모든 차원에서 ‘인간됨’의 존재를 구성한다. 즉, 어른이나 사람은 남성임을 의미한다.


*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 거주나 이동의 자유는 ‘문화적’ 제약이 따르는 문제이다. 장애인에게 거리는 수치가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이다. 실질적으로 장애인이나 기혼 여성은 거주 이전, 이동의 자유가 ‘없다’. 몇년 전 문제가 되었던 여성은행원을 거주지에서 먼 곳으로 발령하는 신인사제도는 성차별문화를 이용한 여성노동자에 대한 ‘합법적 해고’였다.


*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 ‘사생활’은 기본적으로 공/사 분리를 전제한 계급적․성별적 언어이다. 프라이버시(privacy)는 개인의 개념과 함께 탄생했는데, 이때 개인은 중산층 남성만을 의미한다. 우리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프라이버시 개념은 중산층 남성의 프라이버시다. 모든 인간이 인간(개인)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역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9평 아파트에 산다면 9평이 그/녀의 프라이버시 공간이 되고, 50평 아파트에 산다면 50평이 사적인 공간이 된다. 남성에게 집은 프라이버시의 공간이지만, 여성에게 집은 노동의 공간으로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은 집에서 나와 공적인 노동을 할 때 프라이버시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성애자 남성에게 성은 사적인 것이지만, 여성이나 동성애자에게 성은 너무나 공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이제까지 가정내 폭력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주된 근거는 개인(구타 남성)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였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은 인간이 아니므로 여성의 프라이버시는 남편에게 속해 있으며, 폭행당하는 여성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사적 영역에 선택적으로 개입한다. 같은 가정폭력이라 해도 아동학대나 노인학대에는 아내폭력 같은 불개입 논리를 구사하지 않는다. 또한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가정폭력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면 호주제, 상속세, 가족법, 가족계획사업처럼 국민의 사생활에 깊숙이 간여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공사 영역의 분리․대립은 허구적인 것이다. 사생활권 보장에도 불구하고, 소위 여성연예인 비디오사건이나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하는 사례는 한국사회에서 프라이버시가 누구의 프라이버시인가를 보여준다.


*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④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 이 조항은 포르노그래피와 여성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중요한 논쟁 조항이다. 포르노그래피가 “표현의 자유나 여성인권 침해냐”의 논쟁구도로 재현되는 것 자체가 문제적이다. 원래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국민국가(nation state)가 탄생하면서, 거대한 국가권력에 비해 취약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역시 같은 맥락의 권리들이다. 즉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서 존중될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의 몸과 성을 임의적으로 재현하는 현재의 포르노그래피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여성인권 침해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여성이나 장애인, 동성애자의 성적 권리와 욕망을 옹호하는 포르노그래피도 소수지만 제작되고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포르노그래피를 반대하는 것은, 성보수주의자 혹은 ‘검열주의자’여서가 아니라, 현재 제작․유통되고 있는 포르노그래피가 성폭력을 ‘정상적인 섹스’로 묘사하여 성폭력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많은 남성들은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라고 여기고 있다.



4. 맺음말


지구화는 시민들간의 차이와 범주를 급격히 해체․재구성하고 있다. 지구화는 권력, 부, 정체성이 다양하게 그리고 모순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투쟁의 장소, 정치, 경제, 자본, 노동, 국가, 시장 그리고 국제정치의 변화(transformation)는 기술과 통신 발달에 의해 가속화 되면서 동시적이고 탈영토화된 조직구성과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헌법은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서구가 근대시민사회로 진입할 당시의 개념을 그대로 전제하고 있어,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법치가 확립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사회의 비공식 규범체계에 조응하지 못하는(최배근) 법조항들 때문인데, 이는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는 서구 근대언어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적 진보에 따른 서구의 발전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헌법 담론을 ‘실현가능성’ ‘현실논리’에 가두지 말고 다양한 차원에서 상상력과 접근을 허용하여 풍부한 언어가 생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