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BY :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
| 2011.01.06
다 부모 탓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부모가 공부 잘했으면 어찌 자식이 공부를 못할까. 내 친구들을 봐도 그렇다. 범재, 귀현이, 현만이, 병옥이, 영준이네 아이들도 다 공부 못한다. 선규네 큰아들이 서울대에 간 것은 다 애들 엄마 덕분이다. 사내아이 둘을 키우면서 박사학위 받고, 연구소까지 운영하는 선규 마누라는 아주 무서운 여자다. 그러나 아버지를 꼭 닮아 머리만 무지하게 큰, 선규네 둘째는 공부 못한다. 우리 큰아들은 매번 전교 일등이었다. … 오래달리기!
내 큰놈은 공부 빼놓고 다 잘했다. ‘공부만 잘하는 놈’보다 ‘공부 빼놓고 다 잘하는 놈’이 훨씬 훌륭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내 큰아들이 공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3년이 걸렸다. 녀석은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다. 학교 유리창을 깨고, 패싸움하고, 또래 아이들을 패고 다녔다. 맞은 아이의 부모가 자기 아들 멍든 사진 들고 고소한다고 찾아와, 무릎 꿇고 빌기도 했다.
가해자의 부모가 되어 봤는가?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빌어 본 적이 있는가? 안 해 봤으면 말을 마라! 열을 받을 대로 받은 내가,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니, 녀석은 진짜 집을 나가버렸다. 가출한 아이와 자존심 싸움 하며 버티는 부모의 처절함을 아는가? 내가 지칠 대로 지쳐, 아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자, 녀석은 비로소 차분해졌다. 그랬던 그 녀석이 이번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자랑하고 싶어 죽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한다. 내 아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딴따라 음악’을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쁘다. 모두 축하한다며 어느 대학이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대학 이름을 대면 다들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그리 대단한 대학도 아닌데 호들갑이라는 표정이다.
옛날에는 공부를 무조건 잘해야 했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이 인생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생이 진짜 짧았다. 지금 학부모 세대가 대학에 다니던 1970~80년대의 한국인 평균수명은 60살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100살을 넘겨 산다. 아주 오래 산다는 이야기다. 평균수명 60살의 20살과 평균수명 100살의 20살의 존재론은 전혀 다르다.
우리의 자녀들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굵고 짧게 사는 세상이 아니다. 길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인생의 기회도 여러번 온다. 좋은 대학 가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세상이다.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젊어서 일찍 잘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의 대학 시절에, 지금과 같은 세상을 꿈이나 꿀 수 있었던가? 상상도 못했던 세상 아니던가? 평균수명 60살의 사고방식으로 오래오래 살 아이들의 삶을 구속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아니, 자식 걱정 이전에 부모 자신의 삶부터 고민해야 한다. 우리도 80~90살은 너끈히 사는 세상이 되었다. 쉰 중반이면 다들 은퇴한다. 나머지 30~40년을 행복하게 살 자신은 있는가? 자신의 행복한 노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 없으면서,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 근거 희박한 신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요즘 나는 내 아들에게 단 한 가지 조언만 한다. 결혼은 될 수 있으면 늦게 해라. 가능한 한 많은 여자를 만나, 정말 폼 나는 사랑을 다양하게 해보라. 세월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그리고 결혼은 45살에 25살 먹은 처녀와 해라. 그래야 손해 보지 않는 인생이다. 내가 아들과 식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 아내는 나를 아주 잡아먹을 듯 째려본다.
마지막으로 정말 솔직한 한마디 더 보태자. 나도 내 아들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갔다면 이런 이야기 절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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