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남자에게] 제발 ‘나 자신’과 싸우지 말라!
»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겨우 보름 남았다. 2010년은 또 그렇게 지나간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이유는 왜일까? 결심하기 위해서다. 새해는 결심하라고 있는 거다. 결심하지 않으면 새해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새해에 결심한 일들은 죄다 작심삼일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결심의 내용이 잘못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담배를 끊는다,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술을 끊겠다, 조깅을 하겠다 등등. 모두 밝은 미래를 위한 결심이었다. 그런데 왜 새해의 그 웅대한 결심을 한 번도 제대로 실행한 적이 없을까? 다들 내 의지가 박약하고 인내심이 없기 때문이란다. 한숨을 내쉬며 또다시 좌절한다. 아니다. 절대 내 잘못이 아니다.
새해의 결심이 좌절되는 이유는 결심의 내용이나,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옹골찬 계획을 이뤄내기 위한 방법론에 뭔가 치명적 오류가 있는 까닭이다. 나 자신과 싸우려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과의 투쟁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마라톤을 처음 완주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인터뷰 내용은 한결같다. 나 자신과 싸워 이겨 기쁘다고 한다. 산 정상에 오른 이들의 이야기도 대충 비슷하다. 나와 싸워 이겼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도 한결같다. 게으르고 나태한 나 자신을 극복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새해 목표를 세우면서도 마찬가지다. 자꾸 나 자신과 싸우려고 든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불안해서 그렇다. 불안할수록 우리는 적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분명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무 이상 없이, 멀쩡한 결과가 나오면 더 불안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안하면 자꾸 짜증내며, 주위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자신이 불안한 내면의 원인이 분명치 않으니,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미래의 불안이 클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그래야 문제의 내용은 물론 해결책도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착하거나 혹은 비겁한 이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미래는 원래 불안한 거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무한 지속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 1년 365일을 만든 것이다. 무한한 미래를 1년 단위로 끊어 놓으면, 미래가 매년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365일이 지나면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영원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는 인류가 시간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기 위해 지난 수만년간 고안해낸 마법이다. 그래서 새해를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즐거운 결심을 해야 한다. 새해 첫날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하거나 차가운 바닷물에 다이빙하지 말자는 거다. 제발 나를 괴롭히며 싸워 이기려고 달려들지 말자. 이미 충분히 많이 싸웠다. 나 자신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절대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설득해야 할 아주 착하고 여린 친구다.
‘새해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 2011년을 준비하는 내 결심이다. 문구점에서 미리 골라온 2011년 다이어리 첫 장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적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만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남이 시켜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세상에 어찌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결심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진다. 그동안의 내 소심함과 비겁함이 한방에 날아가는 느낌이다. 너무 통쾌하다.
방구석에 다이어리를 펴놓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스스로 감동하는 나를 지켜보던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 던진다. ‘은행 대출금은 다 갚은 다음에나 그렇게 하시지.’ 아, 내 아내는 단 한순간도 내가 혼자 행복해하는 꼴을 못 본다. 내 행복한 꼴을….
김정운 / 명지대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기사등록 : 2010-12-15 오후 09: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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