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마을] 향 연 사 30 / 이윤학
어둠이 내릴 때 나는
저 커브 길을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있었지
저 커브 길 입구에
당신을 담을 수도 있었지
커브 길을 들어 올릴 수도
낭떠러지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지
당신이 내게 오는 길이
저 커브 길밖에 없었을 때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지
커브 길 밖에서는 언제나
푸른 자전거 벨이 울렸지
- 연시선집 <나는 왜 네 생각만 하고 살았나>(생각의나무)에서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먼지의 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인의마을] 마음의 내과 / 이병률
이 말이 그 말로 들릴 때 있지요 그 말도 이 말로 들리지요 그게 마음이지요 왜 아니겠어요 몸피는 하나인데 결이 여럿인 것처럼 이 사람을 귀신이라 믿어 세월을 이겨야 할 때도 있는 거지요 사람 참 마음대로지요 사람 맘 참 쉽지요 궤짝 속 없어지지 않는 비린내여서 가늠이 불가하지요 두 개의 달걀을 섞어놓고 섞어놓고 이게 내 맘이요 저것이 내 맘이요 두 세계가 구르며 다투는 형국이지요 길이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자(杍)이기도, 새벽 두 시와 네 시 사이이기도 하지요 써먹을 데 없어 심연에도 못 데리고 가지요 가두고 단속해봤자 팽팽히 와글대는 흉부의 소란들이어서 마음은 그 무엇하고도 무촌(無寸)이지요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시인의마을] 개밥바라기 / 황학주
당신 쪽으로 종일 나를 굴린다. 당신은 내게로 움푹해진다. 언틀먼틀 애꿎은 삶의 간격이 들어맞는다. 다툰 일이 있은 어제와는 또 다른 얘기다.
당신은 발을 바꾼다. 그간에 개 짖는 창밖 저녁별 하나가 제자리에 놓인다. 돌아누워 잘 때에도 한 발은 내 발에 얹어 수면(睡眠) 위로 다리를 놓아둔다. 배고픈 쪽이다.
당신에게 손을 가져간다. 배를 만질 때 찬반(贊反)이 반반인 자세로 몸이 놀란다. 살이 오른 곳에서 배고픈 뒤까지 별이 발길질을 하며 간다.
종일 자다 물을 먹는 이런 또박또박한 목마름이 있는 우주, 입을 맞춘 첫날 쪽으로, 사랑이 간다.
-시집 <노랑꼬리 연>(서정시학)에서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했다.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저녁의 연인들> 등이 있다.
서울문학대상, 서정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아프리카 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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