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마을] 와락 / 정끝별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시집 <와락>(창비)에서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삼천갑자 복사빛> 등이 있다.
[시인의마을] 오래 남는 눈 / 강영은
뒤꼍이 없었다면, 돌담을 뛰어넘는 사춘기가 없었으리라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쓸어안은 채 쪼그리고 앉아 우는 어린 내가 없었으리라 맵찬 종아리로 서성이는 그 소리를 붙들어 맬 뒷담이 없었으리라 어린 시누대, 싸락싸락 눈발 듣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눈꽃 피어내는 대나무처럼 소리 없이 눈 뜨는 푸른 밤이 없었으리라 아마도 나는 그늘을 갖지 못했으리라 한 남자의 뒤꼍이 되는 서늘하고 깊은 그늘까지 사랑하지 못했으리라 제 몸의 어둠을 미는 저녁의 뒷모습을 알지 못했으리라 봄이 와도 녹지 않는 첫사랑처럼 오래 남는 눈을 알지 못했으리라 내 마음 속 뒤꼍은 더욱 알지 못했으리라.
-시집 <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에서
제주에서 출생하였으며, 2000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하였다.
현재 한국시인협회 총무간사, ‘진단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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