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청소년 인문학 /
먼훗날 그리워할 추억을 만들어라, 바로 지금
» 정여울 문학평론가
생애 최고의 날들이 이미 지나간 과거에 있다면, 이제 그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과연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영화 <카사 블랑카>는 때로는 과거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미래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인생을 통째로 저당잡힌 릭. 그는 오래전에 헤어졌던 연인 일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던 여인에겐 이미 남편이 있었고, 그 여자가 릭을 찾아온 이유는 레지스탕스 리더인 남편과 함께 비밀리에 미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얻기 위해서였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인한 릭은 마음만 먹으면 일자를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릭은 일자를 남편과 함께 떠나보낸다. 일자를 다시 만나기 전, 그는 그리움 때문에 화석이 되어버린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기꺼이 떠나보낼 수 있게 되자, 그는 ‘그리움’조차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비축해둘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리움의 최고 경지는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기꺼이 사랑을 떠나 보내는 용기. 기억을 박제하여 마음의 박물관에 저장하는 일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에게는 이 아름다운 추억의 박제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젊은 시절 가난했기 때문에 데이지를 잃었고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데이지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개츠비는 과거의 연인에게 집착한 나머지, 데이지의 ‘현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여자의 현재는 바로 남편과 아이다. 추억은 아련한 과거 속에서는 아름답게 빛나지만 그것을 억지로 ‘현재’에 끼워 맞추려는 열망은 개츠비를 병들게 한다. 이제 부자가 되어 데이지 앞에 나타난 개츠비는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데이지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데이지는 개츠비‘도’ 사랑했지만 톰‘을’ 사랑한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개츠비는 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열정과 순수만으로 데이지를 열망했던 개츠비는 자신의 ‘조건’으로는 도저히 데이지의 허영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데이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깡그리 조작한다. 자신이 실패한 농사꾼의 자식이라는 것도, 초라한 학력도, 별 볼일 없었던 젊은 시절도, 모두 ‘돈’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여 그럴듯하게 각색한다. 그의 대저택은 호화찬란한 인테리어로 빛나고 그가 주최한 파티에는 유명인사가 가득하다. 그러나 자신이 연 파티에서도 개츠비는 마치 이방인처럼 어색한 포즈를 취한다. 자신의 돈으로 치장한 그 모든 인테리어 속에서 그는 더욱 외로워 보인다.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조차 개츠비가 누군지도 모른 채 왔다 가는 일까지 있을 뿐 아니라, 데이지는 개츠비의 ‘부’(富)는 알아보지만 개츠비의 끔찍한 고독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과거를 향한 그리움에 질식되어 자신의 현재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 여자를 향한 그리움이 무너져가는 그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이제 그 그리움이야말로 그를 죽이는 치명적인 독약이 된다. 그 어떤 시간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비현실적 분위기가 개츠비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지만, 그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끝내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그의 쓰라린 고독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이 남자의 유일한 미래는 곧 ‘되찾을 수 없는 과거’였던 것이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것 때문에 파멸하지만, 어쩌면 그가 정말로 찾아야 할 것은 과거의 사랑이 아니라 아직 ‘조작’되기 이전의 순수한 젊음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데이지를 사랑하는 가난한 청년이었을 때 그는 비록 돈은 없었지만 그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있었다. 그는 그리움에 인생을 저당잡힌 나머지 그 그리움의 에너지만으로는 털끝 하나 들어올릴 수 없다는 것을 간과했다.
퍼내고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시간이 바로 과거이기에, 그리움은 현실이 힘겨울 때 인간이 가장 먼저 찾는 감정의 안식처가 된다. 그러나 추억은 인생의 막간을 채우는 휴양지로는 더할 나위 없지만 정착할 수 있는 거주지는 아니다. 과거에 파묻혀버린 인간은 과거의 중력에 빨려들어가 스스로의 존재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낙원은 그리움이라고. 그러나 더 많은 추억을 그리워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우리는 현실 속에서 ‘오늘의 추억’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추억은 아름답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힘겹게 달려온 오늘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먼 훗날 그리워할 추억을 바지런히 만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살아남은 우리의 행복한 의무가 아닐까.
/ 정여울 문학평론가
기사등록 : 2010-11-19 오후 08: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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