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품관

기형도 그집앞

by eunic 2010. 11. 25.

그집앞

기형도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위의 시를 육하원칙에 맞춰 풀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해 ‘겨울’, 아주 가깝게 모여 앉아야만 할 정도로 ‘좁은’ ‘술집’에서 일행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다같이 오붓하게 한데 ‘섞여’ 술을 마시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사랑’에게 어떤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내 사랑’은 아마도 내게 격렬히 화를 내고 이별을 선언했다. 분명 ‘나의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그러나 내가 어떤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다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켜서, 기분이 너무 좋고 달뜬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방심해서 취한 행동이었다. 어쨌거나 돌이킬 수 없도록 뼈아픈 일이 벌어지다니, 나로서는 이와 관련된 기억 자체를 잃어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남은 일행과 더불어 ‘있는 힘 다해 취했’다. 취해서는 ‘지푸라기’ 같은 눈물을 흘렸고, ‘못생긴 입술’이 될 정도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었다. 벗어 둔 외투나 붙잡고 울었다. 그러자 일행이 내게 ‘고함’을 치고 ‘조롱’하면서까지 나를 말리고 달랬다. 하지만 ‘그 어떤 고함도 내 마음’에 에 와 닿지 않았고, 어떤 조롱도 나를 일으켜 세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라는 구절을 통해, 일행이 아마도 그를 향해 “세상에 그 정도 되는 여자는 쌔고 쌨다. 그러니 눈물을 흘리는 부끄러운 짓 좀 그만해! 사내자식이 그 정도 실연으로 눈물을 보이다니 잘 하는 짓이다!”라고 고함치고 조롱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들 눈으로 보면 ‘내 사랑’은 얼마든지 흔하디흔한, 혹은 ‘내 사랑’보다 잘나고 예쁜 상대가 얼마든지 많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어느 일면에서 더 잘나거나 멋진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이 세상에 같은 사람’, 대체 가능한 존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술집에서 실연당해서 우니까 친구들이 고함치고 조롱하면서 말렸다는 얘기다. 술집 골목에 가 보면 거의 매일같이 목격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술주정 모습이자 추태 장면인 셈이다. 하지만 시인은 과감한 생략과 간결한 단문, 그리고 ‘-ㅆ네’로 끝나는 단정한 회고적 어조를 통해 독특한 서정미를 성취하고 있다. 특히 일행의 ‘고함’과 ‘조롱’을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라는 구절과 대비시킴으로써 ‘보통 사람보다 잘난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라고 하는, 우리 스스로를 은연중에 비하하고 인간을 등급화하는 굴욕적인 무의식의 통념을 강렬하게 전복하고 있다.

술집에서 실연당해 울고 일행이 고함치고 조롱하면서 말리는 통속적인 장면을 다루고 있지만, 서정적인 실연의 아픔으로 간결하고 세련되게 압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은 못난 사람도 있고 잘난 사람도 있어서 웬만한 보통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언제든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하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짓눌러 온 우리 자신에 대한 폭력적인 태도에 대해 통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이러한 저항과 전복을 체감해야 한다. 이러한 체감과 공명능력이 없으면, 독감 앓는 사람의 입맛처럼 위의 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손끝 감촉이 없이는 주머니 속 물건을 알아맞힐 수 없듯이 언어적 감수성 없이는 풍요로운 독서가 불가능해진다.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