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이들이 외식하고 찜질방 가자는 데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드러눕고 말았단다. 다음날 회사에서는 연봉 협상을 하러 들어온 직원이 거미새끼로 보여 엉뚱한 핀잔만 늘어놓았다고 했다.
중소기업을 근근이 꾸려가는 그의 심경을 월급쟁이로서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공감은 갔다. 다른 한 친구가 월급쟁이는 잘리면 <변신>의 주인공처럼 천덕꾸러기가 되는 데 견주면, 깨끗이 먹혀 치울 걱정 없는 사업가가 그래도 낫다고 말해 서로 웃고 말았다.
우리 사회가 참을성이 없어지고 우울지수도 높아진 듯하다.
먹이사슬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거나 사슬에 끼지도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진 탓이다. ‘어미거미 신세’는 비정규직, 실직자들이 중소기업 사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로 바리바리 다 싸 보내고 들녘을 지키는 시골 촌로들이 더 그럴 수도 있고.
누가 뭐래도 객관적으로 어미거미에 가장 가까운 존재는 ‘주부’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부 우울증이 30%에 이른다는 통계가 방증한다.
희생과 봉사도 좋지만 정도가 심하면 병이 된다. 프랑스 작가 베르베르는 지능이 월등한 외계인의 눈으로 인간의 습성을 묘사한 적이 있다. 우리가 제 몸을 희생하며 종족을 보전하는 거미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행위로만 살피듯이 관찰한 것이다.
“그들은 철근콘크리트로 둥지를 만든다. 이 단단한 철근콘크리트에 부딪히면 다칠 염려가 있으므로 내벽에는 섬유로 된 부드러운 재료를 댄다. 그들은 둥지 안에 입방체로 된 갖가지 물건을 들여놓는다. 이 물건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빛을 발한다. … 인간의 수컷이 자기 둥지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대개 오줌을 누는 것이다.”
계속해서 ‘주부’에 대한 관찰기를 덧붙인다면 이럴 법하다.
“성인 암컷이 도맡아 하며, 한번 시작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이직할 수 없는 종신직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끊임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경제권이라는 게 있지만, 수지 맞추느라 늘 쩔쩔맨다. 적게 먹고, 아프지도 않으며, 주말에도 일을 하는 슈퍼맨의 변종으로 바깥일과 병행하는 사례도 꽤 많다. 우리 외계인의 식민지를 지구에 건설할 때 주부 종족을 동원하면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주부의 가사 전담은 설·추석 때 반짝 ‘명절 증후군’으로 도마에 올랐다가 쑥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의 짐이다. 주부는 골병이 들고, 결혼·출산 기피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남자들에게도 부메랑이다.
직장을 떠난 남성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여자는 애라도 봐줄 수 있지만 ….” 흔히 듣는 중년 퇴직자의 푸념이다. 몸과 생산성에 문제를 낳는 데 그치지 않고, 남녀 소임을 구분짓는 가부장제는 의식 세계에도 큰 짐으로 작용한다.
어릴 적부터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체득함으로써, 보편성 대신 이중성을 갖게 한다. 나와 너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게끔 하기 때문이다.
가장은 항상 옳으므로 토론이나 비판은 금기시된다. 시키는 사람 따로, 일하는 사람 따로다. 가부장제 문화는 ‘가장 가까이 있는 불평등’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공격은 지각 없는 행동”이라는 퇴임 재판관의 변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그가 서 있는 지점이 가부장제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과 거리가 있다. 차라리 실직으로 아내가 일 나가자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남자 ‘불량주부’ 이야기가 솔깃하다.
좌충우돌 주부 학습을 하는 ‘불량주부 일기’라는 만화를 〈에스비에스〉가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한다고 한다.
가부장제의 기반을 흔드는 반란군의 이야기를 우선 불온서적 탐독하듯 눈여겨봐야겠다. 그게 길이니까.
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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