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와 대동아는 닮았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동아시아는 평화를 지향하는 담론이다. 대동아는 침략으로 얼룩진 언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시작된 ‘동아시아 담론’이 대동아의 언설에 의해 오염될 징후를 경고한 학자가 있다.
사상사학자인 고야스 노부쿠니가 보기에 일본이 불러내는 동아시아에는 대동아가 숨어 있다.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역사비평사·1만3000원)는 동아시아 평화공존과 대동아공동번영의 차이를 구분해 추출하려는 시도다.
고야스는 “(1930년대 제국 일본의) ‘동아’라는 언설은 비판적 검증없이 살아남아 새롭게 일어나는 동아시아라는 언설 속에 녹아들어갔다”고 짚었다. ‘동아’는 이 지역의 맹주로 군림하려는 일본이 형성한 “역사적이며 정치적 개념”이다. 여기에 ‘남방(남아시아)’을 추가해 ‘대동아’라는 개념을 형성했다.
고야스는 그 밑바탕에 놓인 헤겔의 역사철학을 주목한다. 헤겔(그리고 마르크스)은 동양을 “유럽중심의 세계사 저편에서 원초상태 그대로 정체된 세계”로 봤다. 일본은 이 역사철학을 적극 수용해 “유럽의 보편적 문명의 수용자이자, 이 문명사가 아시아에 탄생시킨 적장자로서 자신을 역사적으로 표상”했다.
△대동아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일본의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혼다노모리공원 안에 있는 ‘대동아성전대비’. <한겨레> 자료사진 |
일본의 대동아론은 그러나 한번 더 변신했다.
유럽문명의 적장자를 자처하면서도 유럽의 근대적 원리에 입각한 세계질서에 대한 항의로 자신들의 전쟁을 합리화한 것이다.
“유럽에 대해서는 다원적 세계사를 주장하면서도, ‘동아’의 권역 내에서는 다원성의 원리를 포기”한 것이다.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이런 역사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미관계를 축으로 한 일본의 전후처리가 전쟁의 성격을 일본에 잘못 인식시킴으로써 아시아와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개선할 길을 스스로 막”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 사회가 말하는 ‘동아시아’에는 이런 ‘대동아’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고스야는 국가간 관계를 중심으로 한 ‘실체적 동아시아’ 형성에 반대한다.
이는 “중화제국 또는 일본제국의 대체물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렇게밖에 되지 않을 제국적 언설”이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문화 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다. “자국·자민족 중심주의를 상대화하면서 이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중다층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하는 관계틀”이 바로 진정한 동아시아 담론의 미래라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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