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의 소설가이자 세계적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73)가 문학에 대해 쓴 글들이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이탈리아에서 지난 2002년에 나온 이 책에서 에코는 문학의 본질과 기능, 문체와 상징 등에 관한 일반론에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단테의 <신곡>,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등의 텍스트에 대한 분석, 그리고 자신의 소설들이 구상되고 쓰여진 과정에 대한 내밀한 고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문학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강연 원고와 논문, 그리고 비교적 느슨한 에세이가 섞여 있지만, 에코 특유의 박학과 사유의 깊이가 이질적인 글들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공산당 선언은 정치적 웅변의 걸작”
텍스트 분석에 특유의 독창석 한껏
에코가 보기에 문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의 집단적 유산인 언어를 생생하게 살아 있게”(11쪽)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은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창조”(13쪽)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아울러 “‘운명’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29쪽) 역시 문학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공산당 선언>의 문체에 대해’는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에코의 사유의 독창성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글이다.
에코는 <…선언>이 “종말론적 어조와 아이러니가 번갈아 나타나는 아주 굉장한 텍스트”이며 “오늘날에도 광고 학교들에서 아주 꼼꼼하게 분석해야 할 텍스트”라고 평가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선언>의 서두를 가리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처럼 가공할 만한 고막의 울림과 함께 시작된다”(이상 40쪽)고 쓰는 에코의 감각은 참신하다. <…선언>이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세계화를 정확히 예측한 데 대해 그가 감탄하고 있기는 하지만, 에코의 관심은 <…선언>의 주장보다는 그 주장을 실어 나르는 기법과 형식에 더 쏠려 있다.
서두에 못지 않게 간결하고 인상적인 결구(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에 대한 찬탄과 함께, 그는 “정치적 웅변의 걸작”(43쪽)인 <…선언>을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것”(44쪽)이라고 주장한다.
‘라만차와 바벨탑 사이에서’와 ‘보르헤스와 영향에 대한 나의 고민’에서 그는 소설가로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글들에서 그는 “단어들을 갖고 장난하였”던 제임스 조이스와 “관념들을 갖고 장난하였”(이상 158쪽)던 보르헤스에게 자신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때로는 뿌듯하게 때로는 곤혹스럽게 고백한다.
조이스와 보르헤스 영향권 고백
‘장미의 이름’등 창작 비밀 살짝 들춰
책의 마지막에 실린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는 작가 지망생들이 특히 관심 있게 읽을 만한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등 자신의 소설들이 구상되고 쓰여진 절차와 방식 등을 편안하게 토로한다.
“(<바우돌리노>를 뺀 )세 편의 내 소설은 모두 하나의 씨앗 같은 관념에서 탄생하였다”(430쪽)거나 “어느 장소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 나는 그곳에 가봐야만 했다”(434쪽), 또는 “소설을 쓰는 데 있어 글을 쓰는 작업은 나중에 한다.
먼저 책들을 읽고, 카드들을 작성하고, 등장인물들의 초상화와 장소의 지도들, 시간적 연쇄의 도식들을 그린다”(457쪽)와 같은 구절들은 에코의 창작의 비밀을 살짝 들춰 보여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읽고 싶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멋대로 해라’ 작가 김현진씨 (0) | 2005.04.04 |
---|---|
“일본 동아시아를 말하지 말라” (0) | 2005.04.04 |
우리 역사소설은 이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공임순 (0) | 2005.04.04 |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0) | 2005.04.04 |
미니마 모랄리아/ 테오도어 아도르노 (0) | 2005.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