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

* 네 커피에 침을 뱉으마

by eunic 2005. 3. 31.
네 커피에 침을 뱉으마
[일다 2004-11-29 02:39]
<필자 박봉정숙님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사무국장입니다. -편집자 주>

“우리 회사 출근은 8시까지입니다. 오늘 아침 제 상사가 동료들 다 있는 가운데 절 앉혀놓고, 오천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나라에 오십 년 밖에 안된 서양 역사가 잘못 전해졌다고 하면서 여사원인 제가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아침에 상사가 출근하기 전에 반드시 출근해서 상사 책상을 닦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상사가 아침 7시 25분에서 30분 사이에 출근할 테니 저한테는 7시 20분까지 오라고 하더군요. 책상을 닦는 것도 그렇고, 저는 상사가 출근 전에 꼭 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상사 출근 전에 여사원인 내가 출근해 있어야 하고, 책상을 닦아 놓아야 한다는 것. 이거 성차별 아닌가요?” (2004년 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사례)

'아직도 이런 커피 타기, 책상 닦기에 대한 상담이 들어오나.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그래, 나도 이런 상황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10년 전에 비해 커피, 카피 심부름으로 상징되는 직장 내 성차별은 많이 줄은 듯 하다.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 '침 뱉어서 잘 저어 갖다 주라'는 대응방안이 새나갔는지 상담건수도 현격히 줄었다. 그러나 없어지진 않았다. 침 가지고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게다. 뿐만 아니다. 직장에서 여성은 행정보조, 업무보조, 혹은 심부름 정도의 단순업무를 하는 사람이고, 그런 일이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은 정보통신시대에서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다.

대기업에서 외부와의 메신저 사용을 금지하면서 이를 뚫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메신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미스리 메신저'. 이 난데없는 '미스리'의 존재는 교사로 일하는 한 회원의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 남선생들이 많이 사용하더라는 이야기였다. 대체 어떤 프로그램인가 싶어 인터넷 통합사이트를 열고 "미스리(미쓰리)"라는 검색어를 쳤더니 어이없는 결과가 나왔다.

사무용품을 판매하는 '미쓰리 오피스'도 뜨고, 판매/거래/재고 관리프로그램인 Miss Lee(미쓰리) 3.40 에 대한 웹 문서도 뜬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점입가경이다. 그리고 커피자판기 중에 가장 인기 있다는 '미스리 커피자판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미스리 자판기'는 민우회에서도 유명하다. 몇 년 전 민우회가 너무 많은 손님들의 커피대접을 감당하다 못해 자판기를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 '미스리 자판기'가 우리 단체에 배달된 것이다.

감히! 당장 공장에 항의전화를 하고 반품을 시키면서 제작 중지를 요청했는데, 그 쪽의 대답은 "죄송하고 당장 반품은 받겠지만, 자판기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제품이라 제작 중단은 어렵습니다"라는 거였다. 그러더니 아직도 나온다. 그 당시에는 자판기에 커다란 챙 모자를 쓴 여자그림이 있었는데, 그건 없어진 것을 보니 그 수준으로 우리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나 보다.

더불어 '미스리 메신저'의 정체도 알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말로 기능을 설명한다. "덕지덕지 지저분하고, 어디 갔다 오면 사라져 버린 메모지. 불편하셨죠? 이제 미스리 포스트잇을 써 보세요. 잊어버릴 걱정도 없고." 미스리 메신저의 쪽지기능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기능을 구사한다. 미스리 팩스, 미스리 꽃 배달 서비스, 문자전송, 사다리 타기 기능 등. 온라인에서조차 여성의 시중을 받고 싶어하는 남성중심사회의 유치함에 기가 찰 일이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상품 이름들은 그 시대의식과 문화에 맞지 않으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소비자가 제대로 되고 볼일이다. 남성들이 제대로 된 소비자가 되도록 계속 침을 뱉자.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봉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