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업은' 사랑 '휠체어 탄' 이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걷지 못하는 소녀와 착한 대학생
애틋한 사랑과 예정된 이별 그려
두 배우 젊은 연기 드라마에 활력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날이 오면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날도 찾아오게 마련이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어쩔 수 없는 연애의 진실이다. 시간은 작은 두 사람의 감정의 떡잎이 활짝 꽃을 피우도록 물을 주고 결국은 그 꽃잎을 변색시켜 땅에 떨어뜨린다. 꽃은 시들고 사랑은 떠나가지만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간의 힘으로 새로운 사랑을 찾고 삶을 이어간다.
다리가 불편한 독서광 소녀 조제(이케와키 지즈루)와 밝고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쓰마부키 사토시)도 그런 사랑과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유별날 것 없는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새롭지 않지만 과장이나 치장없이 멸치 국물처럼 담백한 맛과 가볍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학교를 다니며 마작 게임장에서 일하는 츠네오는 어느 날 게임장에서 괴이한 소문으로 떠돌던 유모차의 주인공을 만난다. 걸을 수 없는 처지로 사람들이 안다니는 저녁때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나오는 구미코. 가벼운 선의로 구미코와 할머니를 도운 츠네오는 두 사람이 사는 집을 들락거리다가 구미코와 사랑에 빠진다.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열혈팬인 구미코가 스스로에게 붙인 사강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다. <오아시스>처럼 현실의 지독한 벽이 사랑 앞으로 튀어나오거나 아예 비현실적인 동화로 흘러가기 쉽다. <조제…>는 담담하고 절제된 목소리를 통해서 양립할 것같은 두개의 갈래길을 용하게도 하나로 모아낸다. 구청의 생활비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조제의 옷차림은 누더기에 가깝고 그는 교과서에서 싸구려 가십잡지까지 할머니가 주워온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분방하고 선량한 츠네오는 꼬질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순간순간 향기를 내는 조제의 예쁜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동거를 시작한 이들에게 현실이 쉽지만은 않다. 여기에는 장애인 조제를 츠네오가 ‘업고’ 다녀야 하는 특수상황도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같음보다 다름이 점점 더 눈에 보이는 커플들의 수순에서 이들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데 영화는 초점을 맞춘다. 결국 츠네오와 조제는 헤어진다. 츠네오는 자신이 도망쳤음을 인정한다. 그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고 조제는 그동안 거부했던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시장을 보고 쓰레기를 버린다. 시간은 이들의 만남을 원점으로 돌려 놓았지만 기억은 두 사람의 삶을 전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 놓는다.
수채화처럼 맑지만 그만큼 밋밋해지기 쉬운 드라마에 활력을 넣는 것은 두 인물 조제와 츠네오를 연기한 두 젊은 배우의 힘이다. <워터보이즈>에서 귀여운 소년이었던 쓰마부키 사토시는 발랄함 가운데 성적 매력이 슬며시 피어나는 20대로 성장했다. 이 영화가 세번째 출연작인 이케와키 치즈루는 81년생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줍음과 솔직함, 당돌함을 고루 가지고 있는 쉽지 않은 조제의 캐릭터를 통해 ‘배우’로서의 인상을 선명히 남긴다.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다. 29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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