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야!한국사회] 위로 문학에서 프로 문학으로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문학적으로 풍성한 시대가 그렇지 않은 시대보다 훨씬 나을 것 같고, 예술적으로 풍성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훨씬 나을 것 같다. 당연한 얘기인가? 문학이나 예술이 무슨 밥 먹여주는 것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간은 두 손으로 걷기 시작하자마자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그런 존재다. 돈만 알고, 자기 입만 알고, 자기 새끼들 대학 들어가는 것만 아는 그런 존재로 인간이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좌파 문학과 우파 문학이 존재한다고 할 때, 한국의 우파 문학은 극단적인 찬미주의에 가까웠고, 좌파 문학은 카프(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이후로 사실주의를 주요 미학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근대화와 함께 한국은 훌륭한 문학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지금 한국의 서점가를 한번 들여다보자.
크게 보면, 우파 문학이라는 것은 사라졌고, 한국 우파들은 처세술을 위주로 한 자기 계발서와 돈 버는 방법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좌파 문학은? 한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같은 미학적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과 호흡이 길기로 유명한 조정래의 작품들이 있었는데, 지금 좌파 문학이 한국에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문학적 키워드라면 공지영의 ‘위로 3부작’을 비롯하여, “어쨌든 너는 아름다운 존재니까”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처세술과 위로, 이 두 가지가 한국 출판의 본진을 형성하고, 여기에 불안한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반영하듯, 영웅 이야기나 역사 추리를 담고 있는 역사물들이 작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지금 형국이다.
올해 바다 건너 일본 서점가의 가장 큰 사건이라면, 1929년 발간된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이라는 소설이 80년 만에 서점가를 강타하여 주로 20대를 대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30만부를 벌써 넘겼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공산당에 대거 입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고판으로 발간된 <게공선>은 편의점에서도 팔고 있으니, 그 인기와 위력이 놀라울 뿐이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도 재번역 출간되었는데, 시대와 공간의 맥락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한국은 위로 문학의 힘이 너무 강해서인지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문화 현상에서의 유행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최근 3∼4년 정도 격차가 있던 것들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도 위로 문학의 최정점이 곧 지나고, 다시 프롤레타리아의 참혹한 삶을 그리는 프로 문학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점쳐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막 전개되기 시작한 비정규직의 삶, 그리고 격렬하게 진행되는 중산층의 분해와 상위 2∼3%와 나머지 98% 국민의 삶의 극단적 갈림이 초기에는 위로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조금 지나면 위로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 현상이 일본에서 실제로 올해 발생한 현상이다.
정치적으로는 비조직, 무저항의 대명사 같았던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들이 금년 4∼5월께 국회 앞에서 연속으로 정치집회를 연 현상이, 곧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 같다. 그리고 그 앞에 한국의 프로 문학이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참고로, 일본의 알바 시급은 만원 내외, 한국은 3천원 안팎이다. 지금 일본의 20대는 죽겠다고 곡소리 내는데, 한국은 괜찮나?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위로는 가고, 프로가 오라! 문학이 다시 시대의 전위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기사등록 : 2008-09-10 오후 07: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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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님이 한겨레 칼럼 기고를 안하면서 외부필자 중에 맘에 쏙 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드디어 생겼다. 우석훈씨. 정희진 선생님과 비슷하다.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닮았다. 현실의 문제를 푸는 방법에서. 우선 제일 닮은 점은 창의적이라는 점. 그리고 둘째로는 이상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서.. 제주, 신개념펀드, 극우와 자칭보수의 19홀 골프, 유기농업에 관한 칼럼을 보면서 이 사람은 보통 남자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남자라는 호칭. 남자들을 가르는 내 방식인데 칼럼을 보면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은 점이 비슷비슷하고 그 속에서 맴돌고만 있는 결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보통남자고. 그걸 벗어나서 다른 것과 이종교배하고 새로운 사고를 끌어들이는 신기한 사람이 새로운 남자다.
내가 그에게 얼마나 빠져있는지, 그를 얼마나 눈에 들어하는지인터뷰 사진에 티셔츠를입고 나오는 걸 보고 감탄에 감탄을 한다.이런 것만봐도 그는 새로운 남자고, 보통 남자와는 다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걸 보여준다고 주장 중이다, (사람들은 시큰둥해 하지만...)
이번에 쓴 위로문학에 대한 제기를 누군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람 역시! 다르구나. (나 역시위로로는위로가 안되는세상이 일찍부터 와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회사에서 짤릴 때"시대가 이런 걸 어어찌하겠어" 하면서 술 사주는 걸로 나에 대한 예의는 다 했다고 생각하는 정규직 동료들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남보다 한 템포 빠르게, 저 멀리 바라보는듯한 그의 감각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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