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 주류 가치 뒤집는 도발적 문제제기 한겨레가 전문가와 함께뽑은 2005 올해의 책 50
페미니즘은 ‘불편하고 까탈스런’ 학문이다. 익숙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상마다 또 다른 시선으로 ‘고쳐 보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물감은 세상이 정한 기준(백인, 서구, 이성애, 남성)대로 사는 이들이 ‘다름’(유색인, 비서구, 동성애, 여성)을 만나면서 겪는 불안감 또는 공포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이란 소제목이 붙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은 주류의 가치를 뒤집는다는 면에서 ‘신선하고 전복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어머니 담론, 여성주의적 언어, 사랑과 섹스, 성매매, 여성인권 등 젠더 이슈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지은이의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우리 사회의 주류인 ‘남성적인’ 시각의 교정을 요구하는 페미니즘 전체의 성과로 봐야 한다. 페미니즘은 서구-남성 중심인 주류 가치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는 영원히 도전적이고 가치전복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삶의 주인이 돼 세상을 바라볼 때, 자아는 힘이 생긴다. 여성은 밭이 아니고 씨라는 점, 피해의식은 여성의 것이 아니라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점 등 가치 전복적인 분석은 여성이 삶의 주인공으로 나선 페미니즘의 힘이다. 반면 저항 담론이 내세우는 사회 전복의 기미가 책에는 없다. 언어와 가치를 뒤집는 일은 ‘협상’일지언정 ‘혁명’이 될 수 없다.
지은이가 내세운 ‘횡단의 페미니즘’은 주류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협상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억압, 불평등, 불안 같은 고통을 유발하는 상황을 뿌리째 없애기보다는 소통과 협상으로 현실을 개선하길 바란다. 이는 가부장을 완전하게 타도해 고통에서 벗어나고 평등을 되찾겠다는 초기의 페미니즘 정신과도 거리가 있다. 단 한번도 세상에서 주류가 된 적이 없었고, 주류가 되지도 않을 ‘좌파적 페미니즘’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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