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새파란 여자애가 기자라며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영 신기했던 우익의 대부 고 오제도 변호사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미스 김’이라고 불렀다. 호칭에 대한 강박이 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이라 “김 기자라 불러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그는 약간 당황하더니 나를 ‘미스 김 기자’라고 불렀다. 오 변호사가 세상을 떠난 뒤 나를 그렇게 불러준 사람은 없었다.
한참 뒤 나를 놀래킨 호칭은 ‘김 여사’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정계 은퇴 전 반주를 동반한 기자들과의 밥자리에서 나를 이렇게 부른 일이 있는데 그 눈길이 끈적하기보다는 되레 낭만적으로 느껴져 제풀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내가 벌써?
취재현장에서 불리던 내 호칭은 다양한 변주를 했다. 미스 김과 김 여사 사이에는 ‘아가씨’가 있었고, ‘김양’과 ‘각시’에 이어 ‘아줌마’도 등장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자기들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보고, 그렇게 불렀다.
남을 부를 때 직함만큼 편리한 게 없다. 그런데 직함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나이와 서열이다. <한겨레21> 취재편집팀에서는 한때 호칭 빼고 성 빼고 위아래 가리지 말고 이름만 부르자는 아이디어가 제안됐다.
“경태! 기사 보냈어요” “창석은 또 밥 먹으러 나갔어요” 이렇게. 선배가 그렇게 부르면 괜찮지만 후배 처지에서는 영 어색했다. 그래서 이름에 이어 쉬지 않고 단숨에 다음 문장을 붙여서 말하곤 했다. “수병아무개가쓴그책어제봤는데, (참던 숨 내쉬고) 재밌었어요” 이런 식이다. 이런 ‘호칭의 민주화’는 한 며칠 쓰이다 숨을 참지 못한 대다수 구성원들의 ‘투항’으로 사라졌다.
나이와 서열을 간단하게 뛰어넘는 것은 내 호칭의 변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별이다. 가끔 사무실에서 일하다 “기자님 좀 바꿔주세요”라는 전화를 받는다. “예 말씀하세요”라고 한다. 둘 중 하나는 “얘기(혹은 제보)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거기 기자 좀 바꿔주세요”라고 다시 말한다. “예, 저도 기잔데요”라고 하면, 잠깐 침묵 뒤,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시 전화하겠다며 끊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이런 제반 조건을 이용한 일이 있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짜고짜 “야이 한걸레야” 하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에게다. 난 ‘대대거리는’ 말투로 “지금여, 다 취재하러 나가셨거덩요? 전 옆방 아르바이트 학생이라 암것도 모르거덩요?” 이렇게 대꾸한다. 이 대목에서 독자 서비스 정신을 들먹이고 싶진 않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한참 마감이나 취재 중에 그런 전화, 서로를 위해 좋지 않다.
“저를 여자로 보지 말고 ○○로 봐주세요” 하는 유의 얘기들은 이젠 ‘뒷담화’ 소재다.
여성이 대단히 드문 시절에 만들어진 사회적 강박이다. 왜 여자를 여자로 보지 말아야 하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 지루하다.
여자 기자가 많아진 세상, 나이와 서열,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는 세상, 그래서 호칭에 대한 강박도 사라져버린 세상이 난 좋다. 미스 김도 김 여사도 좋다. 뭐라 불러도 좋으니 나를 부디 기자이자 여자로 봐달라. 물론 굳이 고르자면 미스 김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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