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

* 영화 실비아

by eunic 2005. 4. 18.
‘실비아’ 시인에게 버림받고 시인이 된 여자




<실비아>는 제작 초기부터 두 가지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하나는 31살의 나이에 자살한 천재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을 그린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실비아 역을 맡은 이가 세계 최정상급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온 문학도 실비아는 훗날 영국 계관시인이 된 테드 휴스(대니얼 크레이그)와의 첫만남에서 운명적 사랑을 느끼고 결혼한다. 남편이 창작에 몰두하는 동안 실비아는 모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잇는다.

“당신은 자전거 산책을 하면서도 시를 쓸 수 있겠지만, 나는 시를 쓰려 해도 빵만 구워져요”라는 실비아의 말에선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싶어하는 애정과 그의 재능에 대한 질투심이 함께 묻어난다.

자신의 예술혼마저 억누른 채 남편에게 모든 걸 쏟았던 실비아의 사랑을 배반한 테드의 외도로 둘은 이혼을 하게 되고, 실비아는 뒤늦은 창작 활동에 열을 올린다.

그래도 사랑을 쏟을 대상의 빈자리에서 오는 고독은 견디기 힘들었다. 외로움과 신경쇠약 속에 실비아의 삶은 파국을 맞는다.

영화는 실존했던 예술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실비아 플라스의 열혈팬이기도 한 크리스틴 제프 감독이 극적 재미와 감동을 위해 지나치게 미화하기 일쑤인 전기영화의 틀에서 벗어나려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

실비아의 삶 한가운데서 한발짝 비켜서 객관적이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 삶의 무게감을 전하려 한다. 귀네스 팰트로의 절제되면서도 깊이있는 연기도 한몫 단단히 한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그려진 실비아의 모습에서는 천재적 예술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창작이나 자살 등 실비아의 선택의 동기를 남편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상처 한가지로만 연결지으며, 그 방식도 직설적이다.

영상과 소리로 이뤄진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실비아나 테드의 시를 제대로 소개하지 않음에 따라 문학 텍스트가 주는 감동을 살리지 못한 점도 아쉽다.

15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씨네파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