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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3)간디에 비춰본'21세기종교'

by eunic 2005. 4. 15.
[석학의 눈으로 본휴먼&디지털]
(3)간디에 비춰본'21세기종교'

매체명 동아일보
작성일 2000-01-17
기고자 장석만

◆믿음에 대한 배타적 집착나,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hi, 1869∼1948)는 재가 되어 1948년2월11일 어머니 갠지스 강과 잠나 강이 만나는 물위에 흩어졌습니다. 나는 지금도 나를 쏜 나투람 고드세의 핏빛 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 때문에 교수형을 받고 죽었습니다. 한때 그는 ‘사티아그라하’(진리를 잡고 놓지 않는다)를 위해 감옥도 마다 하지 않았지만 오직 힌두교만의 인도를 신앙하여 내게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힌두교와 나의 힌두교는 매우 달랐습니다.
나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힌두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등 매우 다양한 종교가 서로 어울려 지내던 곳이었습니다. 내 어릴 적 단짝 친구 메흐타브는 무슬림이었고,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분인 레이챤드바이는 자이나교 신자였습니다.
나의 영혼에 깊은 흔적을 남긴 어머니는 비슈누신자로 신실하게 크리슈나신을 숭배하셨는데,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라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화려하게 장식된 신들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브라만이 행하는 의례도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신성과 대면하고자 노력하신 것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신앙자세는 나에게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나의 힌두교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나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지만 기독교와 이슬람, 불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의 가르침도 받아들입니다. ‘바가바드기타’와 함께 ‘바이블’과 ‘쿠란’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항상 옆에 두고 있던 소중한 책입니다. ‘저 세상’에는 기독교나 이슬람, 힌두교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런 이름의 차이가 계속되겠지만 ‘저 세상’에서는 이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이곳에서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힌두교는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힌두교는 늘 나의 모든 존재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내가 흔들리고 실의에 빠졌을 때 ‘바가바드기타’의 구절은 따듯하게 위로하며 나를 떠받쳐줍니다. 나의 삶은 온통 비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내가 절망 속에 주저 앉지 않은 것은 어머니와 같은 ‘바가바드기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바가바드기타’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바가바드기타’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크리슈나신이 아르쥬나에게 한 충고를 가지고 남을 죽이고 상처를 입히는 데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은 살해될 수 없으니 남을 죽여도 죽이는 것이 아니라거나, 계급의 의무인 다르마는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전쟁에 참가해야 한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기댄 폭력 정당화 안돼
다른 경전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바가바드기타’의 구절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비유로 읽어야 합니다. ‘바가바드기타’는 진리를 꽉 붙잡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전해 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속에서 울려나오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천년 넘게 어깨동무하며 어울려 살았던 인도대륙의 무슬림과 힌두교도들은 서로 갈라져 지금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양쪽은 상대방의 증오가 자기를 덮치는 악몽을 꾸며 서로 모두를 죽일 수 있는 원자폭탄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절실해지는 '사티아그라하'
이는 상대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결국은 자기에게 되돌아온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습니다. 아, 증오로 분열된 내 조국의 이런 모습에 내 마음은 갈갈이 찢겨나가는 것 같습니다.
나를 ‘마하트마’(위대한 혼)라고 불러 나를 민망케 했던 나의 선배 타고르는 한국을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한국도 내 조국처럼 분열되어 있어 나의 관심을 끕니다. 내 조국이 영국 제국주의의 정책으로 종교적인 분열을 경험해야 했다면, 한국은 소련과 미국의 냉전으로 남북분단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폭력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폭력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나는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의 폭력에 대항한 경험을 토대로 폭력을 이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티아그라하’입니다. ‘진리 꽉 붙잡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방법은 ‘아힘사’(비폭력)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힘사’는 모든 생명체와의 연대감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물리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아니면 지적인 것이든 어떤 종류의 폭력도 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힘사’의 원리입니다. 모든 종류의 폭력은 궁극적 완성을 위한 혼의 능력을 빼앗아 갑니다. 물론 ‘아힘사’의 원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고도의 자기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힘든 자기훈련 없이는 이뤄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성(神性)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신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가 바로 신”입니다. 그리고 ‘아힘사’의 원리는 진리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아힘사’는 삶을 부정하거나 삶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껴안고 긍정하며 사랑하는 자세입니다. 개인의 영성(靈性)은 사회적 도덕성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윤리는 신앙의 부차적 부분이 아니라 뗄 수 없는 본질적 부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면의 완성은 언제나 책임있는 정치적 행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티아그라하’의 방법이 21세기에 더욱 필요해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 방법이 정치적 갈등해소뿐 아니라, 일상의 의견차이를 처리하는 데도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이젠 운명공동체
물론 나는 히틀러 치하의 유대인들이 ‘사티아그라하’에 대해 많은 오해를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비폭력의 원칙이 무조건적이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비열한 저격병의 공격이나, 나어린 소녀를 무자비하게 강간하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티아그라하’ 방법이 비교적 온건한 영국 제국주의 정책의 소산일 뿐이라는 비판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보다 잔인했던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고통을 겪은 한국의 경우, ‘사티아그라하’가 과연 효과적일 수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편으로는 통신과 교통의 테크놀로지로 긴밀하게 묶여지고, 다른 한편으로 공해와 핵폭탄으로 죽음의 공동운명체가 된 인류의 현재 상황을 고려한다면, 점점 더 ‘사티아그라하’ 방법이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21세기 종교는 서구의 근대성에 위협을 느껴 ‘순수성’의 과거로 도피하려는 근본주의의 함정을 피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서구 근대성의 모델에서 차용한 ‘정교(政敎)분리 원칙’이란 함정에서도 빠져 나와, 종교적 영성(靈性)과 정치적 윤리의 실천이 한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휴먼&디지털]키워드 '아 함 사'/비폭력 실천원칙
사티아그라하(Satyagraha)와 아힘사(Ahimsa)
‘사티아’(Satya, 진리)는 신과 동일시되며 도덕성과 영성의 궁극적 동일성을 의미한다. 진리를 잡고 놓치지 않는다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는 모든 갈등의 해소방식으로 제시된다. ‘사티아그라하’는 ‘아힘사’(Ahimsa, 비폭력)를 기반으로 한다. ‘사티아그라하’가 목적이라면 ‘아힘사’는 수단인 셈이다. 진리와 신에 얼마만큼 가까워지는가는 ‘아힘사’의 원리를 얼마나 철저히 따르느냐에 달려 있다.
‘아힘사’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유대감과 연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적극적 평화주의와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로 연결된다. ‘아힘사’는 고도의 자기통제와 희생의 훈련이 요청되는 삶의 자세다.
간디는 ‘아힘사’에 대해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폭력과 비겁한 도피 중에서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나는 도피보다는 폭력을 택하라고 권할 것이다.… 아힘사는 비겁자를 위한 방패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용감한 사람의 아름다운 덕이다. 아힘사를 실천하는 데에는 무사들에게 필요한 용기보다도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힘사’를 위한 수행방법은 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위험과 죽음에 직접 부딪쳐 자신을 시험하고 육신의 고통과 유혹 등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폭력에 대항해 언제라도 죽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간디는 ‘아힘사’야말로 지상의 어떤 권력도 지워버릴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원리이며 오늘날의 세상에서 진리를 얻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장석만〈한국종교 연구회 회장〉
□[휴먼&디지털]간디사상의 전개/갈등해결 평화적 접근
간디가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는 이는 산상수훈의 예수를 비롯해 붓다, 무함마드, 조로아스터 등의 종교 창시자,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의 레오 톨스토이, ‘나중에 온 그들에게도’의 존 러스킨, ‘시민의 불복종’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 도덕적 진지함과 지성으로 깊은 감명을 준 레이챤드바이 메타 등이다. 간디는 이들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실천적 원리를 만들어냈다.
간디는 “나는 새로운 원리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원리들을 다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이런 영원한 진리를 “나의 방식대로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고자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간디는 자신을 숭배한다거나 추종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누구도 간디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해선 안 된다. 나는 혼자서 나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스스로 나의 믿음을 좇아서 살지 못하므로 자신을 따르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간디는 말했다.
간디가 죽은 뒤, 인도사회와 힌두교는 간디가 바랐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간디가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힌두교와 이슬람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고 종교적 갈등은 증폭되어 쌍방의 폭력이 난무했다.
그러나 간디의 사상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간디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간디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적용하며 간디를 우리 곁에 살아 있게 했다.
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와 반전 포크가수 조안 바에즈, ‘사르보다야’(Sarvodaya, 모든 이의 복지)운동을 주도한 인도의 비노바 바하브와 자이 프라카시 나라얀, 영국의 E. M. 슈마허, 남아프리카의 알버트 루툴리, 시칠리의 다닐로 돌치, 프랑스의 란자 델 바스토, 스리랑카의 A. T. 아리야라트나, 그리고 한국의 함석헌이 바로 간디의 사상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게 한 장본인들이다.
장석만〈한국종교 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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