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또 하나의 분단을 넘어] ⑷ 땅이 가난을 만든다
10%만 올라도 앉은 자리서 105조 벌어
부익부 빈익빈 ... 분배 왜곡 핵심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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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부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매체명 한겨레
작성일 2005-01-05
‘집값’이란 표현은 사람들에게 종종 착각을 일으킨다.
집은 땅과 건물로 구성되는데, 건물은 사람이 사용하면서 점차 낡아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집값이 자꾸 오른다? 실은 집을 떠받치고 있는 땅값이 오르는 것이다. 건물이 낡아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 이상으로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전체로서의 ‘집값’은 오른다. 재건축을 앞둔 도심의 낡은 아파트가 수억원을 호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물은 거의 가치가 없지만, 그 사이에 크게 오른 땅값이 재건축 덕분에 집값에 반영되는 것이다.
땅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사람의 노동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또 아무리 써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땅은 단지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부와 소득을 얻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땅이 恝?소득의 분배를 좌우하는 정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훨씬 심하다.
건설교통부의 공시지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초 우리나라의 땅값은 1829조원이다.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76%니까 실제 땅값은 2407조원 가량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는 2003년 국내총생산(GDP) 721조원의 3.3배에 이르는 것이다. 선진국의 땅값 총액이 대체로 국내총생산 규모와 엇비슷한 것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나라에 속한다. 이는 국토가 좁아 인구밀도가 높은 탓도 있지만, 땅이 많은 수익을 올려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몇년 동안 우리나라의 땅값 변동을 살펴보면 ‘땅이 사람을 잡는다’는 표현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2000년 전국의 토지가격은 2027조원이었다. 2004년 초까지 4년 동안 땅값은 무려 380조원이나 늘어났다. 연평균 95조원씩 늘어난 것이다. 2000~2003년 사이 연간 국내총생산은 평균 651조원이었으니, 그 사이 땅을 가진 사람들은 해마다 연간 국내총생산의 15%를 벌어들인 셈이다.
땅을 국민들이 골고루 소유하고 있다면 땅값이 얼마나 오르든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땅의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돼 있을 때, 땅값 상승은 심각한 분배의 왜곡을 부를 수밖에 없다.
1996년 나온 한 연구결과를 보면 93년 현재 우리나라의 땅은 상위 1%가 전체의 23.7%(가격기준)를 갖고 있고, 상위 5%가 전체의 44.2%를 갖고 있다. 상위 10%는 55.9%, 상위 20%까지 확대하면 이들이우리나라 땅의 69.7%를 소유하고 있다.
땅을 적게 가진 하위 40% 계층의 토지소유가액은 전체의 6.4%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연구결과가 비교적 오래전 것이지만, 그 사이 이런 편중된 토지 소유구조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소유구조 아래서는, 땅값이 10%만 올라도 토지 소유 상위 5%의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105조9천억원을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내총생산(721조3천억원·2003년)의 14.5%에 이르는 돈이다.
땅에 비하면 주택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주택 소유의 편중도 매우 심한 편이다. 지난 2003년 말 행정자치부가 2002년도 재산세 과세자료를 바탕으로 세대별 주택보유현황을 파악한 결과를 보면, 주택소유 총세대수는 832만 세대로 이중 2채 이상의 집을 가진 세대가 276만 세대에 이른다. 다주택 보유자들은 평균 2.95채를 갖고 있다. 서울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해서, 다주택 보유자 44만세대가 평균 3.24채를 소유하고 있다. 강남지역의 다주택 보유자들은 5만5000세대가 20만채를 갖고 있어 평균 3.67채를 소유하고 있다.
땅과 집의 소유 편중은 가격 상승과 함께 빈부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놓는 핵심 요인이다. 대규모 농지를 독점한 채 소작인들에게 농지를 빌려주고 소작료를 받아먹고 살던 대지주는 사라졌지만, 우리나라 땅의 절반을 소유한 채 가만히 앉아 엄청난 불로소득을 누리는 현대판 지주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땅값, 집값이 들썩거릴 때마다 한국은 이들 ‘지주의 나라’가 된다.
특별취재팀 정남구 김회승 안창현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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