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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테마대담 청소년 성범죄 충격

by eunic 2005. 4. 11.

[테마대담] 청소년 성범죄 충격


매체명 한겨레
작성일 2004-12-28

이달 초 밀양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자 온나라는 충격에 휩싸였다. 누리꾼(네티즌)들의 분노는 인터넷에서 폭행에 가담한 청소년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거리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분노와 충격이 가라앉기도 전에 부산에서 또다시 초등학생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 터지자 청소년 성범죄가 이대로 지나칠 수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체 청소년 범죄가 줄어도 성범죄만큼은 늘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넘기거나 용서할 수 있는가? ‘청소년 지킴이’ 강지원(55) 변호사, 청소년 성 상담소 ‘푸른 아우성’(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의 구성애(49) 대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변혜정(40) 소장이 지난 2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걱정스런 청소년 성범죄의 원인과 대책을 짚어봤다.


청소년 범죄의 경우 대개 비난의 화살은 ‘어른들’과 ‘사회’가 맞는다. 어른들과 사회가 아이들 교육을 잘못 시켰기 때문이며, 아이들은 언제까지라도 우리가 보듬고 가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비난과 분노는 가해 청소년들에게 집중됐다. 토론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건강한 분노’라고 입을 모았다.

구성애 대표=성폭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은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밀양이란 도시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 공감합니다. 청소년 성폭행 사건은 직접적으로 음란물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음란사이트 가입 회원수가 세계 1위입니다. 10대 청소년들이 이런 음란물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일시적 충동에 따라 넘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성범죄가 엄청난 파렴치 행위라는 생각을 못합니다. 밀양사건 가해자들도 일찍부터 음란물에 젖어 있다가 중고등학교에 가면서 힘의 논리와 폭력을 배우게 되면서 범죄를 저지른 거죠. 어떻게 보면 음란물보다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폭력적인 문화가 더 문제일 수 있는데, 게임만 해도 너무나도 폭력적이고 감각화돼 있잖아요. 폭력과 상업적인 성이 결합되고 이게 다시 집단화되면 밀양사건은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변혜정 소장=그렇다면 왜 남자 청소년들이 폭력을 쉽게 배울 수 있는지를 봐야 하는데, 한가지는 그들이 형성해 가는 남성성이라는 것엔 남성에 대한 신화,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자기 집단에서 빠지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일종의 ‘왕따 문화’가 있습니다. 밀양사건의 가해 남학생들 중엔 다른 사람을 직접 괴롭힌 아이도 있었겠지만, 이 그룹에서 빠지겠다고 의사표현을 하면 ‘넌 남자도 아니다’란 식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게 두려워 함께 했던 아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강지원 변호사=이번 사건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성폭력이 많은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사실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성폭력 발생(빈도) 순위가 매년 세계 5위 안에 든다는군요. 왜 우리나라만 이렇게 유난스러울까, 왜 우리나라 남성들은 이 모양일까 생각해 봅시다. 늘 하는 얘기지만, 가부장적 남성우월 사고가 팽배하고 이런 사고 방식이 아직도 어린 청소년들에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구=음란물을 보고 성추행했다는 청소년들을 만나 보면 자존감을 상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자신을 아주 작게 그려놓기도 하죠. 청소년들은 늘 학업과 성적에만 쫓기다 보니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 줄 만한 기준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스스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 불만을) 성과 관련시켜 풀게 됩니다. 시대는 엄청나게 변했는데도, 성인 남성을 포함해 남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멋있는 남자상’이 없고 왜곡된 영웅주의만 있습니다. 여기엔 비열한 힘의 논리가 박혀 있는 것 같고요.


강/ 약자에 무자비한 공격은 이상행동
구/ 특별한 아이들만의 문제 아니야
변/ 왕따 두려워…했던 아이도 있었을 것


변=청소년들에게 성관계는 어떻게 생각될까요? 성폭력을 하는 배경에는 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생각을 들어봐야 합니다. 그들은 성과 친밀성, 관계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상업화된 성문화 속에서 ‘성은 게임이다’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성폭력과 성관계의 구분은 모호할 뿐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범죄가 발생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폭력을 했다기보다 자신의 문화의 결과겠지요. 학교에서는 이성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습니다. 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성교육 시간은 있지만 비디오만 틀어주는 성교육을 더는 원하지 않습니다. 에이즈 예방이니 이런 것들은 이미 다 알거든요. ‘역할 모델’이라든가 관계 만들기에 대한 교육은 없어요.
구=성교육은 ‘섹스란 즐거운 것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전제조건이 중요한데, 이것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뻔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서로 원해서 해야 한다’는 (섹스의) 최저선이 명확히 그어져야 합니다. 원하지 않는 섹스는 피해자에 대한 파괴력이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것이거든요. 둘이 모두 원하는 것이라면 기쁨의 영역으로 즐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그 파괴력과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것입니다.
강=성폭력은 성적 문제이기 전에 폭력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남성폭력은 통제되지 않을 때 더 기승을 부리고, 사회적 통제가 강하면 아무래도 줄어듭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남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서 지나치게 느슨하고 온정주의적입니다. 성폭력·가정폭력에 대한 사법적 처분을 보면 굉장히 관대한 상황입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처분을 내리는 사람이 또한 주로 남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남성이고, 붙잡아서 조사하고 재판하는 사람도 대부분이 남성입니다. 남성들 처지에서는 ‘그런 일쯤이야’ 또는 ‘한순간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막상 피해 여성의 처지에서 보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거든요. 피해여성들이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실제로 자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인식의 차이가 이렇게 극심합니다. 남성이 여성에 대해 좀더 이해의 폭을 넓히지 않으면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변=저는 여성학자로서, 폭력적인 남성 가부장 권력이 왜 하필이면 성폭력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데 관심을 두고 싶습니다. 곧 성폭력은 폭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남성에게 성은 폭력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 약자를 통제하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성폭력이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밀양사건은 여학생들에겐 폭력이었지만 가해 남학생들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성의 표현, 즉 자신들의 집단적인 문화적인 표현일 수 있지요. 이건 어떤 남성 개인의 일탈적인 문제라기보다 남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짚을 때 나타납니다. 예컨대 보스니아 내전, 이라크 전쟁 때에도 성폭력이 있었던 것처럼, 남성에게 성이란 힘을 발휘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는 얘깁니다.


청소년 성범죄의 원인은 직접적으로는 인터넷의 음란문화, 그리고 학교 내의 ‘왕따문화’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남성문화 등으로 모아졌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대책은 무엇인가? 변 소장이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자, 구 대표는 우선 자녀의 행복을 위한 부모의 결단을 촉구했다. 강 변호사는 ‘교육제도 문제로 주제가 넓혀지면 말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손사래를 쳤다.


구=문화 속의 성교육은 전혀 손을 못쓰고 있습니다. 애들이 실제 겪고 있는 것들을 교육이 못 따라가고 있어요. ‘성폭행은 범죄’란 개념도 없고, 여성이 입는 피해에 대해서도 ‘그 다음의 문제’로만 이해합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여성에 대한 이해는 너무 더뎌요. 그저 음란물을 즐기는 행위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죠. ‘성폭행은 범죄’란 개념만 정확히 학습돼도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일선 파출소 소장이 경찰복 입고 남학교에 가서 이런 걸 가르쳐야 합니다.
변=청소년들에게 강력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요즘 남녀공학이 많은데, 제복을 입은 경찰이 남자 청소년에겐 ‘성폭력은 범죄니까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여자 청소년에겐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남자를 만나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거든요.

남자에겐 ‘성폭력은 범죄’라는 교육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자에겐 자신이 남자보다 약한, 남자를 조심해야 하는 약자란 인식을 재생산하고 여성의 섹슈얼리티까지 통제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여성과 남성이 살고 있는 맥락에서 성폭력 문제만을 분리해서 한 학기에 한번 강력범죄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평소 수업시간을 활용해 함께 토론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시험답안에는 ‘성폭력은 범죄’라고 쓰면서도 왜 그런지 맥락은 모르는 거예요.


강=성폭력에서 여성이 약자의 지위에 설 수밖에 없죠. 약자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적 욕구가 왜 생기는지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적 통제가 부족한 면이 있고 대책도 별로 갖고 있지 못합니다. 공격성·가학성의 근본에는 여성들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그런 문화적 배경도 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약자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는 것은 이상행동입니다. 이런 이상행동의 심리적 근저에는 남성들의 콤플렉스,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는 얘기죠. 남자들에게 삶의 고통, 엄청난 부담감이 있다는 겁니다. 작게는 가정을, 크게는 세상을 혼자서 떠받들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데, 이를 잘 돌파하면 생산적인 욕구가 될 수 있지만 벽에 부닥치거나 좌절할 때는 약자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남성들이 불쌍하다고 볼 수도 있죠.
구=공감합니다. 한국 사회는 격변해 왔고 여성도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해졌는데, 남성들은 왜곡된 남성우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죠. 여성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고, 익숙한 건 그저 상업적인 성이죠. 술집에서 돈을 주고 쉽게 성을 사고, 돈 없으면 폭력으로 푼다는 겁니다.


강=성폭력 범죄가 저연령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성폭력 범죄는 일종의 ‘열정범죄’인데, 50~60대 남성들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성적 공격을 하는 것과 한창 혈기 왕성한 시기에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죠. 젊은층의 성범죄를 줄이려면 성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방향을 전환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체력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을 많이 시키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풍토가 지식 암기 위주 교육인데다,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계속되잖아요. 그리니 운동을 할 시간은 없고 발산돼야 할 에너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단 겁니다.
구=맞습니다. 이건 하나의 대안이 될 정도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장기 청소년의 에너지 발산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지식정보 사회로 들어섰다는 면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지식정보사회는 몸보다 정신력을 많이 씁니다. 자칫하면 몸의 활력이 부족한 데서 각종 중독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게임이나 음란물 중독은 균형감각을 잃어 건전한 사고를 할 수 없게 합니다. 균형잡힌 사고를 하려면 몸과 마음이 함께해야 합니다. 학교 교과 과정에도 몸의 활력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하고 사회문화적인 면에서도 한 흐름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변=청소년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하셨는데, 사실 아이들을 보면 학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고 … 지금 입시체제에서는 운동하고 땀 흘릴 시간이 없는거죠. 학원에 가면 또 거기서 자기들 문화가 이뤄지기도 하고요. 학교교육 체계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학교교육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하세월이에요. 이제는 부모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밀양사건은 내 아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자기 아이가 행복하게, 건강하게 클 수 있는 길이 뭔지를 부모가 이 사건을 통해서 보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변=저도 애들 키우면서 고민하는 게 뭐냐 하면, 아이들 사이의 결속과 연대에 부모가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이를 좌우하려고 한다는 건 위험한 생각이란 점입니다. 부모가 다 직업을 가질 경우, 아이가 부모를 만나는 시간은 친구를 만나는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습니다. 아이들의 집단 문화에서 오는 결속감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문화’도 있습니다. 어른들이 결단을 내린다기보다는 자기들 또래문화 속에서 스스로 다른 식의 변화를 제시하게 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길러줘야 합니다.
강=우리 사회 전반의 성적 타락 현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유흥업소가 많은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성매매 시장이 이렇게 큰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지에 대한 사회적인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도덕주의 견지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수준에는 다른 나라 경우와 비슷하게 맞춰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에너지를 가족문화라든가, 예술문화 쪽으로 전환해 뭔가 재창조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좀더 신선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 네티즌들의 분노는 아주 건강…
구/ 청소년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으니…
변/ 다음에 그 애는 어떻게 되나도 생각

구=성매매를 금지하면 성폭력으로 간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런 논리는 없어져야 합니다. 성매매와 성폭력은 동급입니다. 이제는 국민소득 수준을 놓고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는 먹고사는 데 매달리다 보니 성이 여기에 종속될 수 밖에 없었죠. 먹고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고 그걸 밤문화에서 풀었습니다. 이제 국민소득 2만, 3만달러 시대로 가야 합니다. 생존에서 문화 쪽으로 말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성에 대한 인식변화입니다. 1만달러 시대에는 남성이 혼자 벌어 살 수 있었지만 문화생활을 하는 2만, 3만달러 시대에는 여성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남녀가 같이 벌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남녀가 파트너란 인식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발목을 잡는 게 바로 밤문화입니다.


변=여성들이 변화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 권리 보장 등 공적 영역에선 여성이 분명히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적 공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귀는 남자에 의한 성폭력, 남성 교수와 여학생의 성폭력처럼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아직 여성이 저항하기 어렵습니다. 저항하다가는 ‘여자가 드세다’ ‘여자가 왜 그 모양이냐’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모임을 하면 여성들은 항상 사과를 깎습니다. 이런 문화가 성폭력과도 연결된다고 생각됩니다.


구=그동안 청소년 성상담을 하면서 매우 중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 시대에 (성교육의) 방향을 분명히하지 않으면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은 남자아이가 예쁘게 생기면 남녀공학 보내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학생들이 예쁘게 생긴 남학생을 ‘찜’ 해 버린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변했다는 겁니다. 남성에게 억압당했던 것에 액면 그대로 저항하는 것보다 여성 시대에는 여성의 본성을 스스로 알아가려는 노력이 일단 시도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설득의 시대입니다. 남성이 여성에 대해, 여성의 본성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성이 먼저 자신을 알고 주장하며 설득해야 합니다. 남성에 대한 통찰력을 가질 때 여성시대의 리더십이 생깁니다.


청소년 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자는 네티즌들의 요구에 대해 세 사람은 조금씩 다른 견해를 폈다. 구 대표는 청소년의 변화 가능성을 강조하며 ‘획일적 처벌 가중은 무리’라고 보았다. 변 소장은 처벌 이외에 선도를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함께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청소년 선도론을 폈던 강 변호사는 강력처벌 쪽에 무게를 실었다.


강=아까 말씀드린 사회적 통제수단으로서 법·제도적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올해가 성폭력 관련법이 생긴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법과 제도는 얼추 구비됐는데, 실제 집행되는 과정에서 보면 너무나 취지하고는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강간죄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여성이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강력하게 반항을 해야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로서는 위기의 순간에 그렇게 강력하게 반항한다는 자체가 심리적으로 어렵습니다. 조금 더 반항했다가는 더 큰 폭력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인데, 그런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여성심리에 대해 아주 몰지각한 대법원의 판례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법은 있으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수사하는 경찰·검사, 재판하는 판사와 보조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엄청난 상처들을 이중, 삼중으로 입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도 바뀌어야 하겠지만,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법 집행자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실제로 우리나라 강간죄 처벌이 엄청나게 관대합니다. 재판하는 사람들이 여성심리에 대해 몰지각하고, 스스로가 남성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지금 형법에선 살인에 대한 처벌이 가장 엄하고 그 다음으로 강간과 강도죄입니다. 남의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강도죄는 매우 엄하게 처벌하면서, 인간성을 파멸하는 강간죄는 훨씬 약하게 처벌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성범죄 가해자가 청소년일 경우는 처벌 수위의 논의를 매우 심도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처벌이 가중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획일적으로 하는 건 무리입니다. 청소년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청소년 처벌은 그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해 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발되지 않고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때, 사람마다 처벌이 유효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가 책임진다고 하면 소년원에서 빼주고, 다른 애는 오래 소년원 생활을 견뎌야 하는 예가 너무 많은데, 이런 불합리한 일이 많다 보니 오히려 이런 사회적 불합리가 아이들의 머리에 더 강하게 박히기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보다는 합리화나 다른 불만으로 이어져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범죄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량 자체보다 처벌의 공정성이 더욱 중요하고 청소년의 경우 처벌의 근본 목적인 재발 방지와 변화에 대해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아봐야 합니다.
강=청소년 성폭력에 대해서는 살인죄 다음 가는 중한 범죄라는 걸 인식시켜야 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청소년에게 쉽게 관대해지기 어려운 것처럼 성폭력도 마찬가지로 엄격한 법의 집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에 청소년 범죄는 처벌보다 선도 위주의 처분을 하라고 주장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폭력의 경우에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선도와 교화 프로그램을 반드시 병행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변=제가 아는 사례 가운데 중3 남자 아이가 같은 학교 여학생을 강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가 어떤 상황이었냐 하는 것인데, 부모는 가출하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였습니다. 강 변호사님의 말씀에 공감하지만 아이들의 상황이 다 다르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런 애는 만 14살이 넘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우리 사회가 처벌 위주로 간다면 그 다음에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느냐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가해 청소년이 열악한 상황에 있고, 단지 처벌의 강제만 이야기한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가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성폭력 특별법을 활용하면서 어떤 다른 프로그램, 예컨대 강도나 살인과는 달리 성의식의 변화나 폭력 중독 약화, 대인관계 소통 프로그램 등이 반드시 추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해자의 맥락, 즉 연령·계층·환경·지속성 등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하거나 봉사활동 등 그들이 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강제 수강명령이 필요합니다.
구=그동안 청소년 성교육을 담당하다 보니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이중에서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 할 수 있는 교육이 반드시 현실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성폭행이 벌어지면 ‘다 큰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관행이 집단의식 속에서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크면서 그럴 수 있지’라고 해 버리면 한번, 두번, 세번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첫 번째가 중요한데 잘못을 정확히 인식시키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게 해야 합니다. 부모부터, 특히 아버지가 ‘피해를 준 행위’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아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입니다.
강=양성평등 시대를 넘어서 양성협력 시대로 가자고 주창해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남자부터 변하자고 호소합니다. 그런 변화의 움직임이 일부 젊은층에서는 보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밀양 성폭력 사건에 대한 누리꾼들의 분노는 아주 건강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더 확산되어서 성폭력뿐 아니라 양성 차별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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