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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생명=사랑+정의+평화

by eunic 2005. 4. 7.

생명=사랑+정의+평화

시편 85, 1-13 마태오 4, 1-11


조헌정 목사 향린교회

오늘 하늘뜻펴기 제목을 생명은 사랑 더하기 정의 더하기 평화 더하기이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 우리 청년들의 선교보고에 이어 저의 인도 이야기를 이 제목에 맞추어서 해보고자 합니다.

[사랑이야기: 죽음의 집에서 만난 부탄]


콜코타(캘커타)에 있는 죽음의 집에서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죽음의 집은 마더 테레사 기관에서 운영하는 8개의 기관 중의 하나이며 노숙자들을 돌보는 집입니다.

건물 안은 어두침침하였고, 그곳의 사람들은 바닥에 매트레스를 깔고 검은 모포 한 장 씩을 둘러쓰고 들어 누워있었습니다. 약 50명에 달하는 그들의 눈은 쑥 들어갔고 모두 뼈만 앙상한 모습은 영락없이 제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사실 오늘 하늘뜻펴기에 어떤 도움이 될까하여 지난 금요일 밤 부려 제 아내와 함께 마더 테레사 영화를 보았습니다만, 영화에 그려진 이 죽음의 집 모습은 너무 밝고 크게 나왔을 뿐더러 환자들이나 거지의 모습도 너무 예쁘게 나왔습니다. 제 짐작에는 감독이 이 집을 직접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감독이 이 영화를 찍으려면 이곳에서 한 일주일정도 봉사를 해본 후에 하였더라면 더 실체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 도시에는 어디를 가든지 길에서 사는 노숙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곳 죽음의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길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만이 들어옵니다. 사실은 치료하기 위해서 세워진 병원이 아닙니다. 죽음의 마지막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그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한 집입니다.

그날도 죽어서 들어온 시체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노숙자들은 그들에 비하면 정말 백만장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콜코다에서는 그나마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행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는 아침 배식시간이었습니다. 짜르라는 인도식 커피와 빵과 바나나 하나를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본인이 알아서 빨래를 하든지 청소를 하든지 환자를 돌보든지 하면 됩니다. 저는 환자 한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는 사람들을 깨우면서 아침을 먹으라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먹고 있었습니다만, 몇 사람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입구에 있는 몇 분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잠이 깊어 그런가 했더니 이분들은 바로 어제 혹은 오늘 새벽에 새로 들어온 환자들이었고 병이 깊어서 일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 자연스럽게 김진목사님과 저는 바로 앞에 일어나지 못한 환자 한사람씩을 맡았습니다. 김진 목사님이 맡은 분은 나이가 많은 분이셨고 제가 맡은 환자는 20대의 청년으로 애대 보였습니다. 제가 깨워도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러자 배식하는 봉사자가 와서 심하게 흔들자 그제서야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제 힘으로 일어나 앉지를 못합니다. 제가 옆에 앉아 붙들어 세워도 자꾸만 오른쪽으로 넘어집니다. 그래서 어깨를 붙들고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저 자신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눈은 계속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른 손은 팔굽을 굽어 있었고, 왼손은 반대로 계속 비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간질병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말합니다.

기차역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말합니다. 뼈가 앙상한 것을 보아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며 구걸하다가 의식불명 상태 속에서 어제 저녁에 이곳으로 실려 온 것입니다. 왼쪽 발에 피가 흥건하여 보니 두 번째 발가락이 약 일센치 정도 절단되어 있었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주자 한 모금 받아 마십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제가 먹여 주는 대로 아침을 다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피곤이 몰려오던지 또 누웠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청소와 목욕 그리고 간단한 진료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한 달 전쯤 임승계장로님이 팀장으로 있는 작은 공동체 모임을 통해 의정부 복지기관의 장애인들에게 목욕봉사를 해보았던지라 목욕하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몸을 닦고 옷을 입혀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몸은 하나같이 뼈만 앙상하고 상처 투성이였고 피부병이 많았습니다. 상처 안에서 구데기가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대부분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걷기도 못합니다. 한 시간 쯤 이일을 하고나서 아까 돌보았던 그 친구가 어떤가 하여 본래 자리로 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서양 친구 한명이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띄엄띄엄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더군요. 자기는 이태리에서 왔고 본래 직업은 경찰이랍니다. 휴가를 내어 4개월째 봉사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다음 달이면 이태리로 돌아가 경찰을 계속할 예정이고 몇 년 후 다시 휴가를 모았다가 이곳에 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오전에만 일하다 가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조금 있다가 젊은 의사가 와서 이 친구의 발가락 치료를 하고 붕대를 감았습니다. 의사가 오더니 저보고 그를 휠체어에 앉히라고 합니다. 억지로 들어서 의자에 앉혔습니다. 굽혀진 오른팔을 억지로 펴보려고 하지만 펴지지 않았습니다. 오른 팔목에 영어로 글자로 부탄이라고 문신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친구의 이름입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이 친구는 삶의 의욕이 필요하겠다고 하면서 저보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햇볕을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신의 치료가 아닌 삶의 의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판단은 목사인 제게는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잖아도 갑갑하게 여기고 있던 차라 잘되었다 싶어서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건물 밖은 바로 시장입니다. 본래 이 건물은 본래 힌두교 성전 건물의 일부였습니다. 뒤편 성전에서는 매일같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리는 희생제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후에 우리 일행은 염소의 목을 짤라 그 피를 드리고 가죽을 벗겨내는 그 참혹한 장면을 볼 수가 있었고 여자분들은 너무 끔찍하여 다들 눈을 감았습니다.

[사랑은 치유의 능력]


하여간 저는 이 시장을 한 바퀴 돌기로 마음먹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봅니다. 눈으로 인사를 하면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사탕수수를 손기계에 넣고 으깨어 바로 쥬스를 만드는 마차가 있어 5루피 150원을 주고 한잔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마차나 그 기계가 너무 지저분해서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 먹어 보았습니다. 이것 외에도 저는 길을 가다 이상하게 생긴 것은 다 먹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를 먹여 주었더니 한 컵을 다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다 안 먹으면 나도 좀 먹으려고 했더니 한 방울도 남기지를 않는 것입니다. 주위에 우리를 쳐다보는 구경꾼들이 너무 많아 걸음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꽃을 파는 가게에 꽃목걸이 두개를 사서 목에 걸어주려고 하자 싫다고 목을 피합니다. 그래서 그냥 무릎에 두었습니다.

그리곤 계속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니는데, 이 친구가 그 꽃다발을 이제는 자기가 불편한 왼손으로 목에 걸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제 호의를 받아주는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실은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이 꽃목걸이를 의사가 보더니‘성전에 갔다왔구나’그래요. 아 그게 힌두교 성전에 바치는 예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목사가 힌두교 비슈나 신의 예물을 산 셈이더군요. 낮의 햇볕도 따갑고 시간도 흐르고 해서 이번에는 야자열매를 칼로 쪼개 그 안에 쥬스를 사서 먹였습니다. 이번에는 왼손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보니까 하얀 사탕봉지였습니다. 그래서 그걸 사주었더니 또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 시간쯤이 흘러 병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힐체어에 환자를 태우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나이든 수녀 한분이 환자를 왜 밖에 데리고 나갔느냐?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환자는 앞을 보지 못하기에 빛을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의사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면서 아니 이 친구가 보는데 왜 보지 못하느냐?고 했더니 어제 저녁에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수녀님의 태도로 보아 환자를 데리고 밖에 나간 경우가 거의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밖에서 함께 지냄으로 참으로 가까워졌고 이 친구도 이로 인해 상당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충격에서 벗어나 보게 된 것입니다.

자리에 눕히고는 그 옆에 앉아 여기저기 안마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더럽기도 하여 손을 대기가 두려웠었습니다. 어떤 봉사자는 와서 여기는 병균이 많아 위험하니까 장갑을 끼어야 한다고 고무장갑을 주기도 하였지만, 불편하여 벗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두려움 없이 온 몸을 주물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두 손바닥을 억지로 모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눈치를 채고 ‘아 나마스떼’하였더니 머리를 끄덕이는 것입니다. 고맙다는 표시입니다. 얼마나 감동이 오는지 모릅니다. 제가 오른손으로 그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왼쪽 엄지 손톱으로 제 오른 손등을 계속 긁는 것입니다. 고맙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저도 손톱으로 같이 긁어주었지요.

말은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통하고 있었고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번에 걸쳐서 뭐라고 입을 열어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는 없었지만, 몇 시간을 한마디도 하지 않던 친구가 입을 벌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게는 감격적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여주고 이제 작별의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내가 가야한다고 말하자 이 친구가 너무나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것입니다. ‘부탄 너도 건강해져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 부탄이란 인도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처음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하여 곧 죽을 것같이 보였던 이 친구,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던 친구가 생전 처음 본 한국 사람과 몇 시간 사랑을 나누면서 충격에서 벗어나 보기도 하고 말도 하게 된 친구. 노숙자의 삶에서 벗어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병원에서 나와 스스로의 힘으로 설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