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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생명=사랑+정의+평화 < 3 >

by eunic 2005. 4. 7.

생명=사랑+정의+평화

시편 85, 1-13 마태오 4, 1-11


조헌정 목사 향린교회

[직선과 곡선의 차이]
절대유일신관은 역사의 진보성을 전제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지금 서기 2005년은 과거 인류의 역사보다 진일보한 상태인가?

편리라는 관점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행복이란 관점에서 그러하다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의 수명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에 의존하고 있고 공포와 두려움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근 백년의 역사만 보아도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이락크전쟁 이외에도 서로를 죽이는 지역 분쟁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가 인류의 진보성을 어디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무기는 분명히 진보했다. 단 한발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은 발달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진보성은 평화의 진보성이지 무기의 진보성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과연 진보했는가?

도대체 지금의 우리 국민의 분열 상태 남과 북 그리고 열우당과 딴나라당이라는 동서의 분단구조가 천오백년전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지난 2주간 우리 남한 사회는 경제개발이란 경제화두에서 천성산 터널을 중지시킨 지율스님과 새만금 개발을 중지시킨 삼보일배의 생명화두로 뭔가 방향전환이 이루어진 느낌입니다.

일시적인 전환인지 아니면 큰 전환의 시작인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뭔가 다르게 움직여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 주 한겨레 여론란에서 황대권씨는 ‘직선은 곡선을 이길 수 없다.’라는 컬럼을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을 뜻하는 하트모양을 보더라도 인간은 곡선 안에서 휴식을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걷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은 평온해진다. 곡선이 주는 치유의 효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직선을 그것도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산을 깍고 숲을 파헤쳐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만들고 논밭을 밀어 그 위에 콘크리트 직사각기둥을 무수히 꽂아 놓았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싹둑 자르고 갯벌을 메워 항만과 부두를 만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느덧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직선으로 도배질되었다. 그에 따라 직선을 닮은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찌르고 밀쳐내며 오로지 키재기에만 몰두한다.’

아마도 정의는 직선으로 비유될 수 있고 평화는 곡선으로 말해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는 유일신은 직선으로 비유될 수 있고 모든 삼라만상을 신으로 여기는 다신은 곡선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황대권님은 계속하여 말합니다. ‘이 행성은 더 이상의 직선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 수많은 과학자와 예언가들의 지적을 애써 외면하지 말라 이 상태로 직선화를 계속하게 되면 머지않은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자연의 대반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곡선회복운동을 벌여야 한다.’

인류 사회는 아직도 정의의 관점에서 계속 추구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정의가 갖고 있는 모순도 함께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의만 주장하면 남과 북의 통일은 요원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남과 북의 주장하는 각각의 정의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하나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가 죽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가 하나였습니다. 다른 한쪽이 죽어서는 다른 반쪽이 살수도 없고 살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평화라는 개념을 앞세우면서 정의를 논한다면 어떤 상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신학적으로 야훼 유일신을 믿으면서 공존의 평화를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

[사순절은 광야(곡선)의 영성을 회복하는 절기]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새롭게 재 정진하는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훈련과 정화의 숫자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40일간 계속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의식을 벗기 위해 광야 40년을 보내었고 모세는 율법을 받기 위해 40일을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에 나아가 40일간을 단식하며 세 가지의 유혹을 사탄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저는 이를 유혹이라 말하지 않고 대결이라 생각합니다.

이 대결을 저는 직선과 곡선의 대결로 보고 싶습니다.


돌로 빵이 되게 하라.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이는 인간은 육체의 만족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영적인 동물, 하느님의 형상이 담겨있는 존재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영위하는 일로만 만족할 수 없고 생명을 재창조해내는 하느님의 아들과 딸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영위하는 삶은 직선의 삶이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일은 곡선의 삶입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보라.

그러면 성전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은 단번에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할 것입니다. 신이 내려왔다고.

그러나 이는 예수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이함과 공포심을 이용한 직선적 경배는 빨리는 가지만 지속적이지는 못합니다.

사랑의 길이여야 합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빨리 가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더디 걸리더라도 일대일의 곡선의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내 앞에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세상을 다 주겠다. 이는 허위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신이라는 이름을 빌려 행세하는 가짜를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신의 이름을 띤 가짜 신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 가짜 신들의 특징은 직선입니다. 자기를 믿으면 빨리 데려다 준다는 것입니다. 부도 명예도 권세도 모든 성공을 단시일에 끝내주겠다는 것입니다.

영어회화정복 2주 속성과정.

2주안에 10킬로 감량 다이아트 비결.

수시합격 속성과. 치질 단번에 끝내줍니다.

이런 광고판을 달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가짜입니다.

교회도 삶과 이웃과 땅의 역사를 뛰어넘어 구원의 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천국과 지옥을 지나치게 들먹이고 마치 자기 교회 현관이 천국입구인양 떠드는 종교인들은 모두 가짜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말씀하셨지 성공을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심판과 정죄를 말씀하셨지만 그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더 자주 말씀하셨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그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기독인들에게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그의 삶을 따라가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나는 당신을 따라 당신의 삶을 나의 삶에 반복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을 의미합니다.

사순절은 우리 모두가 주님의 뒤를 따라 광야로 나아가는 계절입니다. 고독의 기도와 광야 훈련을 통해 나의 죽음을 경험하고 우리를 현혹하는 사탄의 속셈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절기입니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영성의 풍성한 삶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든지 자신을 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끼를 단식하든지 한주에 하루를 정해놓고 단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기호식품이나 즐겨하는 것들을 한번 끊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시간과 물질을 갖고 주위의 고난 받는 자들과 작은 자들을 위한 사랑의 봉사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다함께 침묵하시며 주님이 기도하고 계신 광야로 나아가십시다. 그리고 그분 옆에 가서 조용히 무릎을 꿇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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