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 21세기 테러의 의미
매체명 한겨레
작성일 2001-09-21
테러리즘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는 1879~81년 러시아의 혁명가 집단이 기도한 차르(황제) 암살 시도와 전제정부의 대응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러시아 혁명당은 2년 동안 네차례의 암살을 시도해 마지막에 성공했다. 처음 세차례의 암살 미수가 준 충격은 매우 커 정부는 양보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암살의 성공은 새 차르의 강압정치를 불러왔을 뿐이다. 이 테러는 다이나마이트와 수류탄을 수단으로 한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세기의 테러는 뭔가 한정적인 공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세계대전이라는 폭력의 극치를 두차례나 경험한 20세기에 들어 인류는 터무니없이 잔혹하게 되고, 테러리즘도 말할 수 없이 비인간적이 됐다. 항공기 납치는 20세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21세기 초두인 지금, 납치한 여객기를 승객을 그대로 태운 채 공격무기로 사용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보이는 증오의 강렬함, 인간성 부정의 격렬함은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숨진 승객, 뉴욕 세계무역센터 등 피해 건물에 있던 사람들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절망에 위로할 말을 찾을 수 없다.
테러리즘은 지금 시작된 것은 아니다. 반미 테러리즘은 계속 강화된 폭력의 귀결이다.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최초의 폭탄테러(1993년 2월), 범인 체포와 투옥, 아프리카 케냐.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에 대한 폭탄테러(98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공격과 경제제재, 예멘 아덴항에서 일어난 미 구축함에 대한 폭탄보트 공격(2000년 10월)의 연쇄 속에서 이번 테러가 일어났다. 미국 안의 비행학교 등에서 조종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칼로 비행기를 납치하고 조종실에 들어가 이번 일을 저질렀다. 다수의 아랍계 조종 훈련생의 존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조종실 난입을 허용한 실책이 이번 사건을 가능하게 했다. 테러리즘 고양의 논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면 대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미국은 외국에 의해 수도가 공격받거나 점령된 적이 없는 예외적인 나라의 하나다. 옛소련과 유럽의 독일.프랑스.영국도, 동아시아의 중국.한국.북한.일본도 모두 그런 비극을 20세기에 경험했다. 때문에 미국에 이번 사건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는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허둥대거나 너무 흥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러범을 체포해 벌을 받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테러리즘을 보복 공격으로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테러리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배양한 문제 상황을 어떻게든지 개선해야 한다. 보복 공격은 테러를 더욱 고양시킬 뿐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스 국가는 군사력에 의해 파괴됐다. 일본의 군국주의도 군사력에 의해 파괴돼 항복했다. 전쟁에서는 전쟁하는 나라를 굴복시키면 전쟁이 끝난다. 그러나 테러리즘은 개인과 개인의 집합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므로, 이것을 무력으로 근절시키려고 하면 인간 전체를 말살하지 않을 수 없다.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대립이라는 토양 위에 핀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아랍의 빈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81년에 러시아 혁명당은 차르 암살에 성공했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분쇄됐다. 그 37년 뒤 제정은 무너졌다. 지금은 테러리즘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파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 뿌리에 있는 것은 이슬람 대중의 생존현실이다. 미국인이 이 위기의 가운데에서 진정으로 그들의 '위대함'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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