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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차라리 일자무식이 낫다

by eunic 2005. 4. 4.
차라리 일자무식이 낫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
칼 마르크스, 장 자크 루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장 폴 사르트르,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
이들 지성인 내지 유명인한테 공통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먼저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연구에 천착했지만, 정작 그의 집에서 수십년 동안 일했던 하녀에겐 동전 한닢 주지 않았다.

그리고 〈에밀〉 〈사회계약론〉 〈학문과 예술론〉 등 교육에 관한 저서들로 유명한 장 자크 루소는 실생활에선 아이들에게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 다섯을 고아원에 버렸다.

또한 톨스토이는 불륜을 사회악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밤낮 안 가리고 사창가를 드나들었으며, 버트런드 러셀은 바람직한 토론문화 정착을 외치면서도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막후에서 저주했다.

현장소설가 헤밍웨이는 진솔과 진실이 작가의 최고 미덕이라 했지만, 실생활에선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다.

행동하는 지성으로 유명한 사르트르는 실은 전형적인 남성 우월주의자로서,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다.

우리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재임기간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노라 하고선, 정작 자신은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으며,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는 민족의 자주와 정통성 운운하면서, 1985년 한국도덕정치교육연구소장직을 맡더니 이제 와서는 일제 식민지기가 오히려 우리에겐 축복이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 중 하나가 ‘지행합일’이 아닌가 한다.

입으로는 정의와 도덕, 사회 공익을 외치면서, 실상은 ‘공공의 적’인 지식인들이 너무나 많아 보인다.

“… 지식인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권력의 조종간에서 멀찌감치 떼어놓는 데 그치지 말고, 그들이 집단적인 조언을 내놓으려 들 때는, 그들을 특별한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지식인들의 위원회를, 회의를, 연맹을 경계하라. 그들 이름이 빽빽하게 박힌 성명서를 의심하라.”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벌거벗은 지식인들〉의 저자 폴 존슨의 말이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잠언은 그 펜 소유자의 실천력이 뒷받침될 때, 혹은 내용에 부합되는 책임 있는 행동이 수반될 때 통하는 말이다.

알면서 행하지 않거나, 그 앎과 반대되는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일자무식이 나을 것이다.

구광렬/울산대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