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직 ‘상상 밖’…소수에 의한 목소리만
지난해 12월 다큐멘터리 영화 <핑크 팰리스>(감독 서동일)가 발표됐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첫번째 한국 영화였다.
지난해 10월 서울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장애인 성 향유를 위한 성 아카데미’가 열렸다. 장애인들이 성을 ‘마음껏 누리고 향유하도록 돕는’ 강좌였다.
이보다 한달 앞선 9월에는 지체장애인인 사진작가 박지주씨가 전신마비 여성장애인 이선희씨를 모델로 한 예술누드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 말하려 했던 내용은 간단하다. ‘무성(無性)적 존재’로 치부됐던 장애인에게도 사랑과 연애, 성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선정적’ 눈길을 주었다가 ‘냉소적’으로 돌아섰다.
정신지체인의 성 문제를 연구해온 전용호 대구미래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성욕을 모른 척 했고, 장애인 스스로도 이를 억누르고 포기했다”며 “장애인의 성 문제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이 분야의 몇 안되는 연구자인 윤가현 전남대 교수(심리학과)는 “손이 없다고 밥먹을 권리가 없는 게 아닌 것처럼, 인간 누구나 갖는 욕구와 권리의 문제로 장애인의 성욕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 문제에 착목한 학술모임이 아직 없다.
재활의학의 한 분야, 또는 특수교육학회 차원의 생활지도 문제로 장애인의 성을 다루는 정도다. 지난 1999년 보건당국 등이 시설에 수용된 지체장애인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던 일은 한국 사회의 ‘낮은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먼저 고민을 시작한 소수에게 떠맡겨져 있다.
장애인 성 문제를 다루는 온라인 매체 <폭시애이블>(foxiable.net)을 준비중인 조항주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조씨는 “장애인의 성을 성매매와 연관시켜 해결할 수는 없다”며 “결국은 봉사의 기본정신을 확대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장애인 당사자의 당당한 요구와 정부의 적극적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안수찬 기자
■ 장애인 ‘성의 천국’ 네덜란드
1970년대부터 자원 봉사
자치단체 시설 운영도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관용의 ‘첨단’은 네덜란드에 있다.
1970년대부터 성혁명을 주창한 시민운동가들이 장애인을 위한 ‘섹스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은 ‘선택적 인간관계 재단(SAR)’이라는 일종의 비정부기구 설립으로 이어졌다. 8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남녀 장애인의 성생활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돌이 아니다. 어떤 중증 장애인도 성적 욕구가 있다’가 SAR의 이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장애인시설에는 ‘섹스 서비스 제공 매니저’가 따로 있다.
시설 내에는 장애인의 성생활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
시설 직원들은 장애인들끼리의 성행위를 돕기도 한다.
옷을 대신 벗겨주고 침대에 눕혀주는 등의 도움이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들에게 성생활 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성매매와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 특유의 법 제도와 문화가 있다.
<섹스 자원봉사>의 지은이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사회보장이 (사회적) 자애를 낳고, 이것이 성에 대한 관대함과 특유의 휴머니즘으로 이어졌다”고 짚는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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