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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장애인 성(性)을, 말한다 희한한가

by eunic 2005. 4. 4.
장애인 성(性)을, 말한다 희한한가


손이 없다고 밥 먹을 권리마저 없는가

책 제목은 <섹스 자원봉사>(아롬미디어·8500원)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부담스럽지만 부제를 보면 주제가 드러난다.

‘억눌린 장애인의 성’. 일본인이 쓴 이 책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 해결을 돕는 자원봉사(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주장의 요지를 이해하는 것과 이를 수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장애인에게 섹스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에겐 ‘상상 밖’의 일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이나 하단 말인가.

그 물음을 비웃는 듯, 책의 첫 장부터 충격적이다.

한 남성 자원봉사자가 신체장애 1급의 노인을 만나 인터뷰한다. 69살의 노인은 뇌성마비를 앓아 태어날때부터 장애를 짊어졌다.

그가 자신의 성에 대해 ‘생생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이어 자원봉사자가 노인을 ‘돕는다’.

노인이 말한다. “비록 손발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성은 삶의 근원, 그만둘 수 없어요.”

담론밖 ‘낯선’ 주제에 대해
어느 일본인 자원봉사 제안
흥미롭거나 불편하게 들리지만
장애인 그들에게 성욕은 있다

곧이어 ‘성’을 말하는 장애인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를 접하는 일은 대단히 흥미롭거나 지극히 불편하다. 대립적인 이 두 정서, 흥미와 불편함은 오직 한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거나 공개적인 여론의 주제가 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장애인온라인신문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칼럼니스트 조항주씨의 말이다.


이 책은 ‘낯선’ 주제로 한국 사회의 ‘경계’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일본에는 장애인들이 사랑의 짝을 찾는 공개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여기에는 ‘자원봉사자’를 찾는 사람과 여기에 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희안한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 분야를 전문화한 성매매 업소가 있다. 지은이가 인터뷰에 한 바에 따르면, 업소 종사자들은 남다른 의미와 보람까지 느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독자들은 윤리적·사회적 물음에 부딪힌다. 장애인의 성욕해소를 돕는 일과 성매매로 인한 여성의 소외문제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인 장애인을 위해 성매매를 허용하는 일은 여성의 성 상품화로 이어진다.

글쓴이는 정교한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이에 대한 세상의 은밀하고도 선정적인 관심을 이성적 판단으로 바꾸기 위해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갈 뿐이다.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해답은 ‘자원봉사’다.

장애인의 소외를 마음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손과 발이 되는 것, 그럴 준비가 돼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와 정부가 제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그 뼈대다.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는 이런 제안을 수용할 채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장애인 섹스자원봉사’는 여러 면에서 윤리적·철학적·사회적 논란을 부추긴다.

서구 유럽에선 대단히 정책적인 문제지만, 한국은 윤리적·학술적 토론부터 거쳐야할 상황이다. ‘성적 소수자’ 문제가 진보담론의 지평을 넓혀가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성은 아직 담론 밖의 일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