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품관

[외신기자클럽] 스타탄생

by eunic 2005. 3. 10.


아드리앙공보 포지티브 기자. 영화평론가

1999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칸영화제의 심사위원단은 일군의 비전문 배우들에게 상을 주었다. 이로 인해 논쟁이 일어났다. 이들의 연기는 분명 설득력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배우의 작업에 속하지는 않았다는 것 때문에 칸이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격한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로제타>로 상을 받은 에밀리 드켄은 이제 출연요청이 쇄도하는 배우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늑대의 후예들>에서 연기를 했고, 올해 로버트 드 니로와 나란히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The Bridge of San Luis Rey)를 찍었다. 그녀는 <휴머니티>(L’humanit)의 세브린 카닐과 여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다. 오늘날 세브린 카닐은 여전히 자기 공장의 극단에서 연기를 하고 있으며 <하늘 한 조각>(Une part du ciel)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전문배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니지만, 두 사람 모두 재능있는 여배우들이다. 그 수상자 명단의 이점은 ‘전문배우’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데 있었다. 따끈따끈한 <오아시스>(사진)의 프랑스 개봉은 이 낡은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많은 관객은 이 영화가 거북하게 느껴진 것에서 나아가 심적으로 뒤틀리게 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들이 한국 관객처럼 배우 문소리를 그 배역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또는 <박하사탕>이 좀더 이목을 끄는 개봉을 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특히나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그녀를 보았었다면 그렇게 반응했을까? 더스틴 호프먼이 <레인맨>에, 톰 행크스가 <포레스트 검프>에 나왔을 때, 우리는 전문가의 어려운 묘기를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놀라워 감탄을 하건 회의하고 무덤덤해졌건 우리는 그들을 곡예사 재주꾼처럼 바라본다. 그러나 문소리가 화면에 등장할 때, 우리에게 그녀는 비틀어지고 침흘리고 눈은 뒤집힌, 완전한 장애인의 몸뚱어리로 보인다. 영화홍보를 위해 잠시 프랑스에 들른 그녀는 지난달(지난 11월) 파리와 리옹에서 열린 시사회에 몇 차례 참석했다. 조명이 다시 들어왔을 때 상영관 안에는 갑자기 희미한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아름다움의 확신에 찬 채 무대에 오른 그녀는 영화계의 스타들만이 지니고 있는 부드러운 자신감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한결 가벼운 마음을 갖게 된 관중은 박수를 쳤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고로 ‘전문배우’란 관객이 그 배우에게 두는 시선으로 정의된다. 이들 상영회에 참석한 프랑스인들은 영화상영 중에, 그리고 상영 뒤에 문소리를 바라보았던 방식을 통해 <오아시스> 주제의 적절성을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었다.

문소리는 이미 위대한 배우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멋진 배역을 맡아 보여줄 것이고 훌륭한 커리어를 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는 <오아시스>가 갖는 원초적인 힘을 되찾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인가가 죽은 셈이며, 이것이 바로 스타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