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앙공보 포지티브 기자. 영화평론가
최근 몇주간 프랑스에서 <장화, 홍련>(사진)과 <살인의 추억> 두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했다. 김지운, 봉준호 감독에게는 프랑스 관객과의 첫 만남인 셈이다. 그들의 전작은 영화제를 통해 영화전문가들에게는 알려졌만, 코미디로 데뷔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코미디는 전세계 박스오피스에서 날리고 있고, 어딜 가나 가장 인기있는 배우들도 코미디 배우지만, 모두 한정된 구역에서만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게 된 듯하다. 코미디는 수출하지 않으니. 배급사들은 나라에 따라 웃기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은 보편진리라고 한다. 미국인들만이 전세계를 웃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외는 규칙을 확인시켜줄 뿐(프랑스에서 <소림축구>의 엄청난 성공(100만명 이상 관람)에 힘입어, 한 거대 배급사가 주성치의 의 배급권을 샀지만 그냥 서랍 속에 잠자고 있다).
가장 상업적인 장르인 코미디가 문화적 특수성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다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세상의 양끝 사이에 문화의 다리를 놓았다면, <조폭마누라>는 너무 전형적인 한국인의 심리를 다루었기에 서양인은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 같다. 서양에서 동양 코미디의 부재는 웃음을 대하는 우리의 전반적인 이중적 입장을 숨기고 있다.
<살인의 추억>과 <장화, 홍련>이 개봉할 즈음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는 흥미로운 전시회가 막을 내렸다. 와토에서 피카소나 마르셀 카르네에 이르기까지, <대행렬(La Grande Parade)-어릿광대놀이>이라는 이 전시회는 두 세기 동안 예술에서 광대의 표상을 다루고 있다. 거기서 이상하고도 괴기스러운 모습이 드러난다. 서커스의 상징인 광대는 동시에 서커스의 가장 큰 희생자이다. 줄타기 곡예사와 공중 곡예사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동안 광대는 콰당 자빠지고, 발길질당하거나 케이크 범벅이 된다. 서커스 무대가 세상에 대한 은유라면, 세상을 미소짓게 만드는 이는 동시에 그 순교자가 된다. 그는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추한 모습을, 우리의 잔인하고 동정심 없는 면모를 드러낸다. 최근 몇년간 한국에서 가장 큰 광대는 <반칙왕>이다.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한국사회의 감춰진 폭력성을 잘 보여주고 있음에도 영화제 참가자들 몇몇만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고결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멜로드라마보다 좋은 코미디 한편 보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다. 코미디는 우리를 발가벗긴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웃어대는지 보여주는 건 우리의 약점이나 결점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동서양이 암묵적인 합의를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의 치부마냥 각자의 광대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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