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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오직 삶에서만 너의 영감을 이끌어내고''

by eunic 2005. 3. 2.

“오직 삶에서만 너의 영감을 이끌어내고”

[한겨레 2004-10-08 18:09]





[한겨레] “너 자신을 존경하지 말라. 인습적인 것으로 되어버린 혁명에 안주하여 스스로를 닫으려 하지 말라. 영리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 공적인 영예를 구하지 말라. 오직 삶에서만 너의 영감을 이끌어내고 지속적인 지적 활동을 유일한 이상으로 갖도록 하라.” 이것은 초현실주의 화가 피카비아가 1922년 3월 프랑스 반문예지 〈리테라테르〉의 재출범 편집의도를 밝히는 자리에서 발표한 강령이다. 초현실주의 화파가 혁명적으로 추구한 목표는 ‘경이’였다. 경이의 복원, 경이의 발견, 경이의 정복이었다. 그들의 방법은 시적 상상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비밀의 문을 열어주는 질료는 삶과 사물과 세계의 철저한 리얼리티였다.
습작시절의 한때 나는 프랑시스 피카비아와 막스 에른스트와 앙드레 브르통, 조르조 데 키리코, 르네 마그리트 같은 이름들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그들은 내 정신의 혁명가이고 천재이고 시인들이었다. 그 강렬한 경도에 비해 작가가 된 이후 오랫동안 까맣게 망각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이젠 나도 피카비아처럼 중얼거린다.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성숙한 것일까? 지친 것일까? 다른 무엇보다도 좀더, 더욱 더 삶의 리얼리티가 그립다. 오직 삶에서만 너의 영감을 이끌어내고 ….

전경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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