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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삼십세 - 잉게보르크 바하만

by eunic 2005. 3. 2.
삼십세 - 잉게보르크 바하만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無)로 환원해버린다.

다시금 의식을 되찾아 전율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나 낮의 세계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갔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기치 않게 또는 자진해서 이런 저런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지나간 모든 셍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리고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쒸워 자신을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껏 그는 이날에서 저날로 건너가며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 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http://windshoes.new21.org (퍼옴)

서른살이 되진 않았지만,,, 서른살을 맞는 첫아침에 눈을 떴을때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