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청년의 잔혹한 행로
시사저널 | 김세희 기자 | 입력 2010.10.07 09:08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19개월 동안 시체를 장롱에 숨기는 엽기적인 행동을 한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지난 9월26일 이 아무개씨(30)를 존속 살해 혐의로 검거해 조사 중이다. 이 사건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불화가 빚은 참극이었다. 이씨는 왜 아버지를 살해했고, 왜 주변 사람들은 무려 1년7개월 동안이나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살해된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아들 이씨는 중학교 때까지는 '착한 아들'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갈등이 잦고, 급기야 어머니가 가출하면서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20여 년간 이씨 가족을 돌봐온 문 아무개씨는 "아들이 상을 받고 다닐 정도로 중학교 때에는 공부를 잘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살게 된 것이 사춘기였던 아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어 했는데, 아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노는 것에 불만이 컸다. 그래서 술만 마시면 잔소리를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부자간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아내가 가출한 후 아버지 이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들 이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매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하루종일 아버지와 아들이 집 안에서 함께 보낸 것이다. 아들은 매일 술에 절어 지내는 아버지가 싫었고, 아버지는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부자간에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아들 이씨는 5년여 전부터 아버지가 술주정을 할 때마다 폭력을 행사했다. 지난해 2월에도 술에 취한 아버지가 잔소리를 했고, 아들 이씨는 그런 아버지를 주먹과 발로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아버지는 신장 1백60cm의 왜소한 체구인 반면, 아들은 1백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아버지 이씨가)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아들에게 맞아 피멍이 들어서 나온 적도 있다"라고 한다. 아들 이씨는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져왔고, 급기야 이를 폭력으로 분출해 온 것이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때리다 보면 아버지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씨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김장용 비닐봉투에 담아 방안 장롱에 숨겼다. 그는 치밀함을 보였다. 시신이 발견될 당시 비닐봉투가 50겹이나 덧씌워져 있었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악취를 풍기자 그때마다 한 겹씩 덧씌운 것이다. 그리고는 테이프로 밀봉해서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그런 탓인지 발견 당시 시신의 상태는 상당히 양호했다고 한다.
이씨의 집과 붙어 있는 이웃집에서도 별다른 냄새를 맡지는 못했다. 인근의 한 주민은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다만 고양이들이 늘 그 집 문 앞에 가서 놀더라. 새끼들을 다 데리고 가서 놀다가 밥 먹을 때만 나오곤 했다. 아무래도 짐승이다 보니 (시체) 냄새를 맡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함께 살던 누나는 초등 저학년 수준의 지능
이씨의 가족이 살았던 집은 약 8㎡(2.5평)로 작은 방 두 칸에 화장실도 없는 허름한 곳이었다. 지난 9월28일 < 시사저널 > 취재진이 방문해보니 살림살이를 놓고 나면 바로 누워 자기도 비좁은 방이었다. 방은 이불과 옷가지, 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씨 부자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능을 가진 누나(32)는 이곳에서 함께 살았다. 아들 이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후 시신을 장롱에 감추고는 누나와 방을 함께 사용했다.
이씨의 집 주변은 서울과 인접해 있는데도 주변에 논밭이 있고 인근에 공사 현장도 있어 하루에도 공사 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시끄러운 곳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충분히 시신을 매장할 수도 있는 주변 여건이 있었는데 왜 19개월이나 시신을 집 안에 숨기고 있었는지 우리도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정황을 보았을 때 그가 욱해서 저지른 우발적인 범행은 아니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창문이 없어 대낮에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이 깜깜한 방에서 옆방에는 아버지 시신을 숨겨놓은 채 그는 잔인한 일본 만화와 추리소설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부엌으로 쓰이는 방 앞 작은 공간에는 빈 음료수 병과 컵라면 용기 수십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한쪽에 놓인 가스레인지와 식기구들은 녹이 슨 채로 몇 년은 지난 듯이 보였다. 마땅한 수입이 없는 이들의 주식은 라면과 콜라였다.
아버지 이씨가 숨지기 전에도 한동안 무직 상태였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수입원은 누나 이씨뿐이었다. 누나 이씨가 성치 않은 몸으로 공장에서 벌어오는 60만~70만원이 이씨 가족의 생활비 전부였다. 그 돈으로 월세 10만원과 생활비를 충당해야만 했다.
아들 이씨가 집에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라면과 음료수를 살 때도 편의점을 이용했다. 인근 슈퍼마켓의 주인은 "(이씨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끔 출퇴근하는 누나의 모습만 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절친한 친구도 없었다. 이씨 가족을 오랫동안 알아온 한 이웃은 "아들에게 대인기피증이 생긴 것 같았다. 무협지나 만화책만 보면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항상 아들의 그런 점이 불만이라고 말하고는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씨의 범행도 결국 들통나고 말았다. 아버지 이씨가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고 집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점 등을 수상하게 여긴 친척이 장롱 속에서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19개월 동안의 범행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씨는 경찰에서 "검거될 때를 대비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그의 집을 방문한 친척이 경찰에 신고하기 직전 도망을 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당일 늦은 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태연한 모습으로 경찰에 잡혔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이씨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가끔 비웃음 섞인 웃음을 보이기도 하고 상황에 대한 판단도 예리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숨겨왔던 패륜아의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이광수 고양경찰서 강력팀장은 "이씨가 수사에 협조를 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적대심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강했다"라고 말했다. 경찰 일부에서는 이씨를 정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자'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의 성장 과정과 검거 후의 침착한 모습으로 보아 사이코패스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유족들은 현재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서 앞에서 만난 유족은 매우 격앙된 어조로 "왜 이러는 것인가" "내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나"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함께 있었던 누나 이씨 역시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다.
아직까지 이씨가 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명확히 설명해줄 단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가정불화로 인해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던 부자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김세희 기자 / luxmea@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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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이 거꾸로 증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함께 산 누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게 될까.
그리고 그들을 버리고 가출한 엄마는 또 얼마나 마음의 빚이 커졌을까.
사랑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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