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싶은 책

우리 역사소설은 이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공임순

by eunic 2005. 4. 4.
“이순신 타령 뒤엔 친일 은폐 숨었죠”


‘식민지의 적자들’ 낸 공임순씨

“80년대 이후 역사 소설과 역사 드라마 등은 쏟아져 나오는데, 막상 그것을 다루는 이론적 작업은 부실한 것 같아요. 특히 현재적 관점에서 그런 역사물들의 의미와 파장을 진단하고 견제할 비평적 개입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장 국문학자 공임순(36)씨는 문학과 역사와 현실이 관계 맺는 양상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다.

그가 2000년도에 낸 문고본 <우리 역사소설은 이론과 논쟁이 필요하다>는 역사소설 장르론을 다룬 서강대 박사학위 논문을 일부 포함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풀어놓은 책이었다.

그의 두 번째 저서가 되는 <식민지의 적자들>은 앞선 책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더욱 확장·심화시킨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광수의 <이순신>과 김훈씨의 <칼의 노래>, 김탁환씨의 <나, 황진이> 같은 소설들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제목에서 짐작되다시피 그는 특히 이광수와 윤치호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친일파들이 이순신이라는 역사상의 인물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민족적 죄과를 희석시키려는 기도를 까발린다.

“이순신을 영웅으로 부각시키는 이면에는 음험한 정치적 의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광수와 <동아일보>, 이은상과 박정희와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친일 행적과 정권의 비합법성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웅 이순신’을 동원한 셈입니다. 이광수는 조선 민족과 왕실의 무능력을 고발하기 위해, 박정희는 야당과 학생 등 비판세력을 혼란의 원흉으로 몰아붙이기 위해 이순신을 이용했어요.”

‘이순신 이야기’에 대한 이런 해석은 이즈음의 화제작인 김훈씨의 <칼의 노래>에도 이어진다.

“<칼의 노래>를 논하는 이들은 그 작품의 문체미학이나 허무주의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말을 하면서도 그 배면에 감추어진 권력지향성에는 눈을 감는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이순신은 적과 동지가 구분되지 않는 칼에 대한 믿음, ‘고독한 남성의 아우라’ 같은 것을 통해 철저한 파워 엘리트로 그려집니다. 그 과정에서 다수 민중과 여성은 타자화하고 소외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김훈의 이순신은 이광수의 이순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순신 소설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해 이 책에서 공씨가 공력을 쏟는 것은 친일과 반공이 한 뿌리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 “김옥균을 대일본제국의 일부로 자연화”했던 김기진은 해방과 전쟁 이후 또다시 김옥균을 끌어들여 “지나(=중국)와 조선과 일본이 동등한 자격으로 상호협화”할 것을 촉구한다.

상호협화라고는 하지만 실상 김기진은 ‘중공’의 인해전술이 한국전쟁과 분단을 초래했다는 논리로써 일제의 책임과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한꺼번에 덮어 버리려 한다.

그런 점에서 김기진은 “반공의 가장 절친한 동반자는 바로 친일”임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친일과 반공이 은폐하고있는 것을 다른 말로 ‘부끄러움’이라 할 수 있다고 공씨는 말한다.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무치(無恥)’의 사회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상쇄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며, 민족 정통성이니 국가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그렇게 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순결 지상주의’는 곤란하지만, 최소한의 부끄러움에 대한 감각이 개인 차원에서나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나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 체제 속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건 부끄럽고 슬픈 일입니다. 기득권자가 되지 않고, 체제에 안주하지도 않고, 무언가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어 보고 싶어요.”

-푸른역사/1만9500원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