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페루로 떠났다면 그건 막막하잖아요, 막막한거 말이예요.....내리는 이 비를 그가 보는지 어떤지 그 여자는 모를테니까요. 여기에 비가 내리는 날 페루의 한 도시에선 건조한 모래 바람이 불지도 모르고 여기에 눈이 내리는 어느 날 페루에선 사람들이 해수욕을 떠나고, 여기는 화창한 날인데 페루에서는 폭풍우에 시달린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일본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뭐 프랑스, 독일도 아니고 신문에 나오는 세계 주요 도시의 일기예보에도 나오지 않는 페룬데.... 아시겠어요? 내가 먹는 이 우동을 그도 지금쯤 저기서 먹고 있겠지, 하는 생각도 못하고 .......... 내가 듣는 이 노래를 어디선가 그도 듣고 있겠지, 그런 생각도 못하고......... 우리가 자주 걷던 길을 걸으면서 한번쯤 내 생각을 할까, 내가 그런 것처럼, 하는 생각도 못하고 힘들었겠지요. 언제나 보내는 사람이 힘겨운 거니까요. 가는 사람은 몸만 가져가고 보내는 사람은 그가 빠져나간 모든 사물에서 날마다 그의 머리칼 한 올을 찾아내는 기분으로 살 테니까요. 그가 앉아있던 차의자와 그가 옷을 걸던 빈 옷걸이와 ....... 그가 스쳐간 모든 사물들이, 제발 그만해, 하고 외친다 해도 끈질기게 그 사람의 부재를 증언할 테니까요. 같은 풍경, 같은 장소 거기서 그만 빠져 버리니 그 사람에 대한 기억만 텅 비어있어서 꽉 차버리겠죠. 그 여자가 어떻게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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