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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낭만적인 잠수부의 작은 눈

by eunic 2007. 5. 31.

낭만적인 잠수부의 작은 눈

- 이 산

며칠째 달라붙은 눈雪이 기와지붕에 입체로 남는다

얕은 물결을 만든다

그 아래에 누워 나는 매일 밤 어느 바다

따뜻한 해변으로 닿는 파도의 피부

원양어선이 담기는 수심쯤으로 꿈을 밀어 보내는 것이다

아랫집에선 아직 아무 소리가 없다

저녁이 되면 혼자 사는 그 여자는 TV 소리를 크게 키우곤 했다

그 속에서 자란 목소리들 해바라기처럼 달아올라

내 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기상캐스터는 내일의 날씨를 따라 변덕스러웠고 때로

아나운서의 비장한 음색을 흉내 내며 두꺼운 책의 행간을 쫓아가

는 밤

심해어처럼 그 속을 비집고 다니던 여자는 나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언젠가 설탕을 빌리는 사이가 되고

구석에 앉아 마지막 담배를 나눠 피울 수도 있겠지만

가끔씩 수도꼭지 수압이 낮아질 때면

나는 밸브를 닫아

그녀의 해저에 더 많은 물을 돌려보낸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가 낯선 물고기를 위한 대화의 형식이다

아가미처럼 눈을 껌벅이며 오랫동안 물소리를 듣다 잠이 드는 밤

큰 눈을 가진 물고기가 바닥에 몸을 숨긴다

1978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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