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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자발적인고 우아한 가난 /한겨레21

by eunic 2007. 1. 2.
자발적이고 우아한 가난

숨은 후배를 찾아간 지리산, 사람은 없고 ‘자발적 가난’만 남았네… 누추하기 십상일 텐데 누리는 법이 무엇일까, 가능할까, 왜 못할까

▣ 김선주

지리산에 다녀왔다. 섬진강 물빛은 여전히 연록색으로 푸르고 강가의 모래톱도 가을볕에 하얗게 반짝거렸다. 쌍계사 가는 길의 나무 터널은 더 깊고 어둡게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쌍계사를 지나 이쁜 집에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는 산악인 남난희씨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집 앞뜰에 가지런히 정렬한 수십 개의 장독에서 된장이 익고 있었다.

50만원이면 뒤집어써요

평상에 앉아 이따금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쫓고 있는데 구름 속에 가려 있던 달이 불쑥 나타났다. 보름이 하루 지난 열엿새의 달은 서울에서 보던 달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환했다. 내려다보이는 산들이 하얗게 떠올랐다. 여러 번 이곳에 왔던 조선희씨가 영빈관이라고 명명한 손님방에서 솜이불을 덮고 잤다. 낮에 우리가 온다고 불을 땠다고 했다. 따뜻하게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그가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내놓은 밥상은 여덟 가지 곡식과 은행이 드문드문 들어간 잡곡밥과 온갖 야채와 표고가 들어간 된장찌개. 죽순 장아찌와 깻잎 장아찌, 참나물, 열무김치, 취나물이었다. 돌아와서도 입맛이 다셔지고 생각만 해도 입에서 침이 고인다.

그래 뭐 먹고 사노? 나는 그저 어디 가나 묻는 것을 또 묻고 있었다. 먹고사는 데 돈 안 들어요. 다 농사지어 먹지요. 돈이요? 돈 안 들어요. 무뚝뚝하지만 자상하게 설명한다.


△후배는 어디로 숨은 것일까. 방에 들어가니 몇 권의 책만 남아 있었다. <자발적 가난>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은 도종환 시인 집의 무쇠 솥이 걸린 아궁이.

“콩 10가마로 된장 농사해서 그걸 다 팔면 1500만원쯤 되지요. 재료값 제하고 다 팔리진 않으니깐 1년에 600만원 수입이 있지요. 한 달에 50만원이면 뒤집어써요. 남아요. 아들에게 윤선생영어 과외도 시키고 있어요. 여행을 데리고 다니다 보니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느껴서요.”

집에는 컴퓨터도 있고 인터넷도 되고 누군가 월드컵 때 갖다주었다는 번듯한 텔레비전도 있었다.

아침 일찍 그의 차로 노은동으로 향했다. 지리산에는 삼은동이라고 숨은 동네가 있는데 고은동·노은동·심은동이고 우리가 가는 곳은 노은동이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지리산으로 들어간 후배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십 몇 년 되었다는 그의 차는 산길을 힘차게 올라갔다. 그는 산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눈여겨보았다. 나중에 톱을 가져와서 나무 해가겠다고 위치를 눈여겨보았다. 된장 띄울 때 방에 나무로 불을 때어야 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를 많이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을 누가 먼저 와서 가져갈까봐 걱정되는 듯 보물을 두고 가는 사람처럼 아쉽게 뒤돌아보았다. 1시간 반쯤 달렸을까 지난 비에 도로가 손실돼 이곳부터는 차가 못 다닌다는 팻말이 나왔다. 차에서 내렸다. 걸었다.

남난희는 지팡이로 풀숲을 헤치며 뱀이 나온다며 길을 인도했다. 사람 한 번 안 만나고 2시간을 걸어 올라갔다. 가는 도중 그는 지리산 살림에 부족한 것은 없는데 그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무 잘하는 머슴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후후 웃는다. 불편한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서울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오픈 하우스도 아닌데 연락도 안 하고 “계십니까. 여기 남난희씨 댁입니까” 하고 들어오는데 난처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살림살이가 이곳저곳에 소개된 적이 있어서 물어물어 찾아왔다는데 박절하게 대할 수도 없고 그냥 그렇다고 불평도 아니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시골 사는 친지들의 집을 시도 때도 없이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들이닥쳤던 경험이 있는 나는 켕겼다. 각자에겐 처음이고 모처럼의 나들이겠지만 당하는 쪽은 그렇지 않겠고나 싶었다.

산꼭대기에 작은 집 한 채가 있었다. 그림같이 앙증맞고 야무진 집이었다. 천주교 수사가 직접 지었다고 했다. 솜씨가 어떻게 좋던지 지붕, 문짝, 창문, 툇마루 하나하나가 그냥 예술이었다. 그 수사는 집을 그렇게 예술로 만들어놓고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목수 연장을 꾸려서 이곳저곳에서 목수일을 하며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지리산에 갔다가 비어 있는 이 집에 홀딱 반한 후배가 집주인의 승낙을 받고 수개월째 살고 있었다. 인기척이 없었다. 문고리에 묶인 줄을 살살 푸니까 그냥 열렸다. 깨끗이 빤 행주들이 부엌 의자에 걸렸는데 바짝 말라 있었다. 밥해먹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주인이 써놓은 연락처와 불조심하라는 메모가 걸려 있었다. 누구든지 들어와 쉬려면 쉬고 자려면 자라는 배려가 있었다. 후배는 이미 그 아름다운 집을 떠난 상태였다.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돌아올 만큼 멀리 떠났기를…

아주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마당 한쪽의 작은 연못가엔 어른 주먹만 한 참개구리가 꿈쩍도 않고 앉아 있었다. 무당개구리는 그 작은 연못이 전 우주나 되는 것처럼 쭉쭉 다리를 뻗어가며 유영하고 있었다. 연못 옆에는 후배가 겨우내 얼음물로 빨래하고 밥해먹은 빨래터가 있었다. 대나무 통 속에서 흘러나오는 찬물을 들이켰다. 완전히 사람이 드나들 수 없게 잡초로 우거졌던 앞뜰을 추위를 무릅쓰고 훤하게 정리해놓은 후배는 어디로 떠난 것인가. 어디로 숨은 것인가. 너무 멀리 떠나면 돌아오기 힘든데….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멀리 떠났으면 좋으련만….

방에 들어가니 몇 권의 책이 남아 있었다. <자발적 가난>이 눈에 들어왔다. 자발적 가난이라…. 참 이상도 하지. 얼마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산티아고로 890km를 걷기 위해 떠난 후배도 떠나기 전날까지 들고 있던 것이 <우아하게 가난하게 사는 법>이라는 책이었는데.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하고 누추하기 십상인 가난을 우아하게 누리고 사는 법이 무엇일까. 가능할까. 왜 못할까. 책을 들고 나왔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자발적으로 가난하고 우아하게, 자발적으로 가난하고 우아하게, 자발적으로 가난하고 우아하게, 매일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

*‘김선주의 종이비행기47’은 이번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사랑하고 성원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뒤를 이어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 한비야씨가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내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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