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0℃ 음악, 광고에서 즐겨봐
[한겨레21 2004-10-07 22:09]
21세기 유행음악의 보도국 TV광고
… 당신도 이미 ‘일렉트로니카’를 즐기고 있다
▣ 김수현 기자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는 이효리. 시선과 시선이 엉키고 몸과 몸이 아슬하게 비켜간다. 삼성전자 애니콜 슬라이드 폰 광고는 스르륵 부드럽게 열리는 단말기의 특징을 섹시하게 풀어가고, ‘슬라이딩’은 배경에 흐르는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과 만나 한층 부각된다. 음악에도 공간감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듯, 앞뒤로 밀고 당기는 육감적인 음들이 성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마케팅 전쟁의 선발대 ‘광고’는 항상 최신식 무기를 찾아 눈에 불을 켠다. 때론 영혼을 달래는 고전 음악이, 때론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하여 소비자의 ‘귀’를 점령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렇기에 음악 프로그램 <음악캠프>에서 만나기 어려운 신선도 0℃ 음악을 광고로 접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1세기의 새로운 유행음악, 일렉트로니카도 디지털과 개인주의에 호소하는 ‘휴대전화’ 광고를 근거지로 삼아 일반인의 귀 속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휴대전화 광고를 중심으로 퍼져가
‘일렉트로니카’라 불리는 전자음악들은 더 이상 고전적인 악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음원이 가득 담긴 모듈에서 원하는 소리를 뽑아 파형들을 꿰어 맞춘다. 무의미한 전자 신호음들은 전통적인 박자와 자연음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21세기형 음악으로 거듭났다. 이젠 상업광고에도 심심찮게 등장하여 거만하게 한 바퀴 돌고 들어간다.
업계 1위를 지키는 애니콜 광고들에서도 일렉트로니카를 발견하긴 어렵지 않다. 도 1980년대 전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신스팝으로, 신시사이저 소리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자음악의 ‘싹’이 된다. 들썩거리는 버스 안 풍경이 음악과 어울려 사랑받은 세븐·박정아의 ‘버스’ 편에선 영국 일렉트로니카 듀오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의 가 신나게 울려퍼진다. 에릭이 등장하는 ‘가로본능’ 편의 사파리 듀오(safari duo)나 ‘이효리 독주 댄싱’ 편의 우슐라1000(ursula1000)도 댄서블한 ‘비트’로 유럽 등의 클럽에서 사랑받는 이들이다.
‘감각적인 음악으로 한몫 봐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받은 건 SK텔레텍의 스카이 광고도 마찬가지다. 천장이 부서지면서 사람이 떨어져도, 비행기 좌석에서 머리를 박을 뻔할지라도 항상 잃지 말아야 하는 건 차별적인 음악적 미감을 제공하는 ‘선곡 정신’이다. 최근 시작한 ‘천장’ 편 배경음악은 오스트레일리아 현지 촬영 중 우연히 구한 곡으로, 영국 밴드 스타세일러(starsailor)의 를 리믹스했다. 원곡이 품은 모던록 특유의 암울한 습기와 ‘리믹스’라는 전자적 가공 단계가 만들어낸 몽환적 분위기가 섞이면서 입맛을 돋운다.
아름다운 전자음을 펼치는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에어(Air)도 인기다. 2002년 스카이 광고에서 2번이나 등장했던 이들은 하나포스 ‘나는 박한별이다’ 편과 팬택앤큐리텔 ‘핸드백 든 보아’ 편에 이어, 최근엔 박신양이 등장하는 양복 광고에서 독특한 질감을 만들고 있다. “일렉트로니카라니 냉장고 같은 음악이냐”라며 낯선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던 당신도 이미 광고를 통해 디지털 감수성을 한껏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유난스럽게 광고계의 호출을 자주 받고 있는 ‘시부야계’도 넓은 범위에서 전자음악이다. 정작 도쿄 시부야에선 들을 수 없다는 농담과 함께 국내에 소개된 ‘시부야계’는 라운지·보사노바·재즈·디스코 등 갖은 재료를 솥에 모아 전자적으로 끓여낸 음악이다. 특히 지난해 내한공연을 가진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antastic Plastic Machine)의 곡들이 LG 싸이언 디카폰, 현대 오일뱅크, SK텔레콤, 비너스 메모리폼브라, KTF 매직엔에 줄줄이 이어지니, 몬도 그로소(Mondo Grosso), 피지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 코넬리우스(Conelius), 토와테이(Towa tei)의 곡들까지 선보이는 걸 감안한다면 가히 ‘시부야계’의 한국 광고 공습이라 할 만하다.
이런 음악들은 광고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오디오 PD에 의해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음악 컨설팅 업체 ‘라임라이트’의 강재덕 PD는 광고 스토리보드 단계부터 참여한다. 직접 곡을 제작할 것인가,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볼 것인가라는 기초적인 선택사항에서부터 작업이 시작한다. “LG싸이언에선 ‘샤바샤바다’나 ‘붐붐디디붐붐’ 등 반복적인 주문으로 중독성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실험적인 개성을 요구하는 제품 특징에 맞춰 새로운 음악을 찾았다. 라네즈 광고에서 ‘이나영’과 ‘남자가수 가요’를 성공적으로 조합한 것처럼 광고음악으로 ‘브랜드 자산’을 만들고자 한다. 이미지 중심의 광고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매끈함이 전자음악의 전부는 아니다" 독일 초기 전자음악부터 앰비언트·드럼앤베이스까지 다양한 일렉트로니카 하위 장르를 즐기는 음악 마니아 권영환씨는 “휴대전화는 개전제품(個電製品)이라 가족 중심적 가치보다 개인의 감성을 자극하려 한다. 감각적인 음악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며 “개인적으론 요즘 광고에 자주 나오는 라운지·시부야계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트렌디’할진 몰라도 왠지 ‘젠’체하듯 느껴지는 매끈한 이 음악들이 일렉트로니카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라운지는 말 그대로 호텔 라운지 소파에서 느긋하게 듣는 음악이다. 광고에서 ‘여유’라는 이미지가 상품화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사실 음을 분할·조합·구축하는 일렉트로니카엔 서구의 합리주의적 태도가 스며 있는 게 사실이다. 이아라 리 감독의 일렉트로니카 다큐멘터리 <모듈레이션>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이 음악의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이성적인 어조로 설명하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독일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크라프트베르크는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다. 우리는 사운드 과학자들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일렉트로니카가 일부 신을 형성하고 있지만 광고에선 아직 드물다. 삼성카드 광고에 등장한 클래지콰이의 정도가 눈에 띈다. 포츈쿠키·제펫·모조소년·DJ 솔스케이프(Soulscape)·캐스커 등 개성이 풍부한 국산 음악도 많다.
완결성을 지닌 곡에 칼을 대어 만든 광고음악은 15초의 난도질이 가혹한 만큼 반대급부로 ‘광고에 나올 만큼의 개성’이라는 품질보증서를 발급해준다. 오디오 PD의 전문적인 식견과 광고주·광고대행사의 OK 사인이 음악을 인증한다. 벅스(www.bugs.co.kr)나 렛츠뮤직(www.letsmusic.com) 등에 마련된 CF음악 코너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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