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김성균 옮김 우물이있는집 펴냄·1만4000원 | ||
<유한계급론>에서 베블렌이 당대의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바라보는 태도는 신랄하고 냉소적이다. 그는 유한계급이 왜 노동을 천시하는지, 왜 비실용적인 옷을 입는지, 왜 터무니없는 낭비를 일삼는지를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인류학·역사학·심리학의 여러 방법론을 끌어들인다. 특히 유한계급의 역사적 탄생을 인류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독창적이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행동양식의 본질을 ‘명예의 획득과 과시’에 있다고 본다. 그 ‘명예’가 최초의 사회적 의미를 얻게 되는 과정을 그는 원시적인 약탈 문화에서 찾는다. 이 야만의 문화에서 다른 부족과 전쟁을 벌이거나 사나운 짐승을 사냥하는 데서 용맹과 완력을 과시하는 것은 명예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냥과 약탈로 얻은 노획물·전리품은 개인의 탁월한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물이 된다. 약탈과 사냥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 집단적 관습으로 정착되면, 비약탈적 활동에 투입되는 육체노동은 비천하고도 가치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계급이 분화한다. 비천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열등한 인간으로, 약탈 경쟁에 승리한 사람은 고귀한 인간으로 이해된다. 고귀한 인간은 명예를 얻고 존경을 받고 시샘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유한계급은 이 고귀한 인간의 무리에서 탄생한다.
원시사회 전리품은 우월함 뽐내는 상징
산업사회 들어서며 금전으로 변형돼 유전
여가로 시간 보내고 쓸데없는 돈 펑펑
이 금력을, 다시 말해 우월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과시적 여가’와 ‘과시적 소비’다. 두 생활양식의 공통점은 ‘낭비’다. ‘과시적 여가’가 ‘시간’을 낭비한다면, ‘과시적 소비’는 ‘금전’을 낭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노동할 필요가 없음을, 노동과 무관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과시적 여가’다. 여기서 여가(leisure)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논다는 뜻이 아니라, 생산적인 일과는 무관하게 시간을 쓴다는 뜻이다. 생산적인 노동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된다. 과시적 여가는 자신이 스스로 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살 수 있음을 입증하는 수단이다.
과시적 소비는 돈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쓸데없는 일에 큰돈을 쓰는 것을 말한다. 값비싼 사치품은 아무런 실용성이 없기 때문에 과시적 소비의 좋은 소재가 된다. 터무니없이 비싼 선물을 하거나 화려한 축제를 벌이는 것도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는 점에서 과시적 소비의 적절한 대상이다.
베블런은 과시적 여가든 과시적 소비든 유한계급의 지위를 입증하는 증거물 노릇을 하는 것은 똑같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부를 과시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편이 될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고 말한다. 과시적 소비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규모로 만나는 도시생활에서 더 자주 채택된다. 반면에 과시적 여가는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 사는 시골생활에 더 적합하다. 과시적 여가든 과시적 소비든 중요한 것은 다른 계급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입증하는 데 있다. 베블런의 이 관점은 취향의 차이로 자신을 특화하는 행동패턴을 탐구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좀더 풍요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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